병풍산이 감싸고 서편으로 넓은 들이 있다

 

작천면 소재지에서 지방도 829호선을 따라 영암방면으로 가다보면 널따란 논들사이로 오롯하게 자그마한 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이 마을의 이름은 척동(尺洞)마을이다.

마을뒤에 위치한 산과 마을의 형태가 예전 나무로 만든 자의 모양을 닮았고 선녀가 길쌈할 실을 뽑아내는 형태로 이름이 붙여졌다.

마을은 크게 2개 지역으로 나눠진다. 본 마을은 잣골이라 불렀고 지방도 829호선을 넘어서는 풍낙골이라고 불렀다. 
 

마을로 들어가는 진입로다.
마을로 들어가는 진입로다.
오래된 가계가 있었던 건물이다.
오래된 가계가 있었던 건물이다.

 

마을뒤편은 병풍산이 막고 남쪽으로 광대한 농경지가 펼쳐져 예전부터 겨울에도 따뜻한 소규모 마을이다. 척동마을로 들어서면 대형 느티나무 두그루가 손님을 반긴다.

400여년 수령의 느티나무는 변함없이 마을을 지켜주면서 주민들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 예전에는 20여개의 선돌들이 마을입구에 자의 눈금처럼 자리하고 있었지만 현재는 대부분 경지정리로 사라지고 몇 개만이 남아 당시를 기억하게 하고 있다.

마을회관 앞이다.
마을회관 앞이다.
제각이 있다.
제각이 있다.

 

척동마을에는 참게샘이 있다. 마을의 효자였던 남평문씨의 광신, 명신형제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게를 자주 구해 줬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광신형제는 묘의 밑 작은샘에서 물을 길러 3년간 시묘살이를 했다. 샘에서는 이상하게 광신형제가 물을 뜨러오면 참게가 나타나는 것이다.

광신형제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참게를 잡아 제사상에 올릴 수 있었다. 광신형제는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또 다시 시묘살이를 했고 이때도 참게샘에서는 참게가 올라왔다고 한다.
 

마을의 남쪽이다.
마을의 남쪽이다.
골목길이 넓다.
골목길이 넓다.

 

광신형제는 효종과 현종 임금이 세상을 떠나자 매일 3년간 산에 올라가 곡소리를 내는 충절을 나타내 후손들이 이 산을 제사를 지내는 봉우리인 제봉(祭峰)이라고 불렀다.

이후 광신형제의 효성과 충절이 알려지면서 숙종은 후손들에게 세금을 없애는 면세해택을 줬다. 이와 함께 광신형제에게 정3품 당상관벼슬인 호조참의 벼슬을 내려줬다. 예전 척동마을은 남평문씨, 장수황씨, 장흥마씨 성씨들이 주로 생활했다.

마을뒷편에는 상곡사가 자리잡고 있다. 문옹, 문빈, 문구연 3대의 충효와 도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1858년 지역의 유림들이 만든 것이다. 이후 수차례 개보수를 거쳐 지난 92년 다시 모습을 정비했다.

매년 음력 9월 15일 강진유림들이 상곡사를 찾아 제사를 지내고 있는 곳이다. 장흥마씨의 마천목, 마응정, 마응방을 모신 충정사도 마을에 자리잡고 있다. 충정사도 매년 상강(10월 23일경)때 강진유림들이 제사를 지내고 있다.  /주희춘 기자

저작권자 © 강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