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월간 연재하며 박물관 역사 되돌아 보는 계기 됐다

지난 5월 18일자 554호부터 연재를 시작했던 사투리와 민속품이야기의 연재가 이번호를 끝으로 마무리하게 됐다. 지금까지 나는 병영면 도룡마을에서 태어나 병영동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광주의 중학교 진학하면서 타향살이를 시작했었다. 결혼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1990년 중반무렵부터 와보랑께박물관 운영을 시작했다.

고향에서 박물관을 운영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고 응원해주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돈이 되지 않은 박물관을 운영하고 수집품을 비싼 돈을 들여 구입하고 그림을 그리며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가족들의 응원과 도움이 컸다. 특히 나의 배우자인 강임수씨 덕분에 지금까지 큰 탈없이 박물관을 운영하면서 살아갈 수 있었다. 다시한번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내가 운영하고 있는 박물관은 민속품을 전시하는 박물관이다. 전국에 민속품을 전시하는 곳들은 적지않지만 전국 어디에도 사투리 그림을 전시하는 곳은 찾아보기 찾기 어려워 많은 주목을 받았다. 관심은 현재도 진행형으로 사투리 그림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박물관을 찾고 있다. 이들중 몇몇은 그림을 구입해가기도 한다.

내가 이렇게 사투리에 관심을 갖고 그림을 그리고 전시를 하게 된 이유는 사투리도 우리의 소중한 문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농촌에서조차 갈수록 사라져가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고 나라도 이를 보존하고 지켜가자는 마음에서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투리를 모아 뜻과 해석을 달아 책도 발행해 지역주민들과 관광객들에게 배포하기도 했고 사투리를 그림으로 그려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연재를 하면서 다시 한번 물품을 기증해준 사람들을 떠올릴 수 있게 되기도 했다. 2017년 2월경 해남에 살고 있던 한 사람이 군인용품을 기증해왔다. 물건이 1톤 트럭으로 2대분량이었다.

그 사람은 아들이 평생 수집해온 물건을 아들이 세상을 떠나자 장례를 치르고 박물관으로 찾아와 기증했던 것이었다. 고인의 아버지가 기증한 물건은 아직도 박물관 한쪽에서 소중히 전시를 하고 있다. 이 물건을 볼때마다 그 사연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지곤 한다.

또 한명의 기증자가 있다. 바로 학창시절 친구였던 조병선이다. 친구는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TV를 통해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는 내 소식을 전해듣고 강진으로 내려와 수석을 기증했다.

친구가 기증한 수석은 양이 많아서 3~4번정도 서울을 오가며 물건을 나른 끝에 겨우 모두 다 가져올 수 있을 정도였다. 수석과 받침대의 짝을 맞춰 놓았고 받침대가 없는 수석은 임시로 화분을 구입해와 모래를 채우고 그 위에 세워놓는 방법으로 전시했다.

이렇게 해서 2016년 친구가 기증해준 수석으로 특별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조병선 친구는 수석 기증이후 나에게 여러 가지 물건도 가져다주었는데 예전에 선물받았던 비누선물세트의 양철통을 가져다 주기도 했고 돈을 세는 화폐계수기, 어머니의 한복 등 다양한 물건들을 가져다주며 내가 운영하는 와보랑께박물관이 잘 운영되기를 빌어주기도 했다.

전시회를 개최하고 난 후 얼마뒤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 친구는 세상을 떠나고 없지만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수석들을 바라보면 항상 친구의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앞으로도 박물관을 성실히 운영하고 사투리 지킴이 역할도 계속해나가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정리=오기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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