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답사1번지’슬로건은 강진관광에 날개를 달아 주었죠”

윤봉전 선생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권을 들고 유홍준 교수와 인연을 맺게 된 사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윤봉전 선생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권을 들고 유홍준 교수와 인연을 맺게 된 사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진하면 떠오르는 수식어는 ‘남도답사 1번지’이다. ‘남도답사 1번지’는 이제 사실상 강진을 의미하는 고유명사처럼 사용되고 있는 것.

‘남도답사 1번지’라는 명칭은 바로 유홍준 교수가 1993년 발표한 책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권 가장 앞부분에서 사용된 단어이다. 최근 유 교수가 전라남도 주최로 강진에서 특강을 실시했다.

유 교수와 아주 특별한 인연으로 30여년째 우정을 나누고 있는 인물이 있다. 바로 성전면에 거주하고 있는 윤봉전(83) 선생이 주인공이다.

인연의 계기 ‘나의문화유산답사기’
윤 선생은 어린시절을 완도에서 보냈다. 그곳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24살이 되던해에 강진과 인연을 맺게 됐다. 20대 절은 시절 건축 토목기술자로서 인근 곳곳을 돌아다니며 일을 하게 됐는데 이 시기 친척의 소개로 강진으로 오게되면서 지금까지 60년동안 살고 있다.

강진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윤 선생은 ‘남부건설’이라는 건설회사도 설립해 운영하기도 했다. 건설회사를 운영하면서 지역내 여러 가지 공사현장을 맡아 일을 하면서 회사를 운영했다. 이렇게 운영하던 건설사는 윤 선생이 나이가 들면서 2003년 무렵 정리했다.

건설회사를 정리한 후 윤 선생은 성전 자택에 머무르면서 약 3천㎡ 정도 논에서 벼농사를 짓고 자신의 취미생활을 즐기며 살아오고 있다. 

윤 선생이 지난 9일 강진을 찾은 유홍준 교수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윤 선생이 지난 9일 강진을 찾은 유홍준 교수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윤 선생이 강진에 살고 있던 1993년 어느날이었다. 차를 타고 우연히 강진읍 영랑생가 부근을 지나게 됐는데 영랑생가 부근에 관광버스와 차량들이 많고 사람들도 여러명이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됐다.

이때만 하더라도 지역내 유명 관광명소에 사람이 많은 경우는 드물었기에 관심있게 지켜보게 됐는데 몇몇 사람들이 똑같은 책을 한 권 들고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가서 관광객에게 들고있는 책에 대해서 물었고 바로 이 책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권이었다. 책 부제가 ‘남도답사1번지’라는 제목으로 가장 앞 부분에 강진의 영랑생가를 비롯한 주요 문화재들이 소개되어 있었다.

나는 그길로 서점으로 향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구입해 일어봤다. 책을 읽어본 후 강진 사람들이 항상 옆에 있었고 항상 보아왔던 것들이 소중한 가치가 있고 문화유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특히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강진’이라는 곳이 책을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되리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었다.

전화통화로 강진소개 감사인사 전해
윤 선생은 강진의 훌륭한 문화유산을 글로 멋지게 표현해준 유 교수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전화통화를 하기 위해 우선 책을 펴낸 출판사로 전화를 걸어 저자의 전화번호를 물었다. 출판사에서는 저자 전화번호 대신 유 교수가 당시 근무하고 있었던 영남대학교 연구실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지난 1994년 유홍준 교수가 책발행후 옛 강진문화원 건물에서 특강을 실시했다. 유 교수 앞에는 상패가 놓여져 있다.
지난 1994년 유홍준 교수가 책발행후 옛 강진문화원 건물에서 특강을 실시했다. 유 교수 앞에는 상패가 놓여져 있다.

 

곧바로 영남대 연구실로 전화를 걸었는데 교수가 아닌 학생이 전화를 받았다. 윤 선생은 전화를 건 목적을 전하고 유 교수님과 통화하고 싶다는 뜻을 전하면서 전화번호를 남겨두었다. 전화가 올것이라는 큰 그대는 하지 않았지만 기다리고 있었고 그날 저녁무렵 유 교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처음 유 교수는 당황한 듯한 목소리로 책 무엇 때문에 전화를 걸었느냐며 물었고 윤 선생은 강진을 소개해주어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고 목적을 이야기했다. 그제서야 유 교수는 긴장을 풀고 정답게 인사를 나누게 됐다.

이후부터 윤 선생은 수시로 유 교수와 전화통화를 하게 됐고 개인 휴대폰 전화번호까지 서로 공유하는 사이로 발전하게 됐다. 이때 윤 선생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통해 강진을 전국에 알린 유 교수를 강진으로 초청해 특강을 요청하고 싶었다.

유 교수는 긍정적인 답변을 주었으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일정이 많아져 강의 일정을 잡기가 어려웠다. 이렇게 해서 1994년으로 넘어가게 됐고 당시 박재순 군수에서 김영록 현재 도지사가 강진 군수로 부임하게 됐다.

윤 선생은 이를 핑계로 신임 군수가 부임했으나 강의 문제를 확정하자고 재촉한 끝에 강의일정이 잡히게 됐다.

“유 교수는 옴천 토하를 좋아하지”
1994년 6월 22일 유횽준 교수가 책을 발행한 이후 처음으로 강진을 찾아와 강의를 하게 됐다. 강의 장소는 현재 청소년문화의 집 부지에 있었던 강진문화원이었다.

이때 유 교수는 버스를 타고 강진을 찾았고 윤 선생은 터미널로 마중나가 유 교수와 함께 했다. 이날 강연에는 전임 군수이자 전남도로 자리를 옮긴 박재순 군수도 참석했는데 전남도지사의 감사패를 유 교수에게 전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다.

이후 윤 선생을 주축으로 뜻있는 강진 군민들이 모여 1996년 유 교수를 강진군 명예군민으로 위촉해 명예군민 1호가 됐다. 첫 번째 강진에서 강연이후 2002년 무렵 유 교수는 두 번째 강연을 했다. 

첫 강연후 90년대 후반 무렵 유 교수는 한번 더 개인적으로 강진을 찾아 윤 선생을 만났다. 유 교수는 윤 선생에게 강진의 옴천에서 만들어진 토하젓을 구입하고 싶어했다.

윤 선생은 곧바로 젓갈을 담을 플라스틱 용기 2개를 구입해 강진읍 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에서 토하젓을 구입했다. 이 상인은 젓갈을 담으면서 유 교수에게 “이 토하젓은 진짜가 아니여”라는 말을 전했다.

이 말은 옴천 토하로 만든 토하젓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이 말을 들은 유 교수는 시장상인의 정직함에 감탄을 하며 “역시 남도답사1번지 강진은 시장상인도 다르다”라는 말을 윤 선생에게 남겼다. 

이때문인지 지난 10일 특강을 위해 강진을 찾은 유 교수에게 강진원 군수가 직접 옴천 토하를 선물했다.

윤봉전 선생은 “강진을 유명하게 만들어준 유 교수에게 군민의 한사람으로써 평생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겠고 앞으로도 소중한 인연 계속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오기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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