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거북이 엄청크다~ 어쩌다 이리로 잡혀 왔을꼬?”

그림 강화경
그림 강화경

 

“저기 마을 앞 농어 바위 옆에 모래밭 있잖은가? 그리로.”  
“예, 사장님.”
상원은 또 순배를 따라 나섰다. 어머니가 상원을 보며 눈을 흘겼다.  
“더운데 너는 이제 그만 가거라.” 
“싫어요.”
상원은 얼굴에 비 오듯 흐르는 땀방울을 옷깃으로 닦았다. 순배를 따라 또 돛배를 탔다. 잽싸게 가우섬 앞바다에 이르렀다.
어장 안으로 들어선 순배와 상원은 어린 거북들을 바라봤다. 상원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삼촌, 새끼들은 내가 보내 줄래요.” 
“그럴래?”
상원은 어린 거북들을 수대에 옮겨 담았다. 물 빠진 바다 위를 저벅저벅 걸어 바닷물 가까이 다가갔다. 한 마리씩 꺼내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어린 바다거북을 바다에 놓아 줄 때마다 속삭이며 말했다.  
“너희들만 보내서 미안해.” 
“가서 잘살아.”
“잊지 마. 내 이름은 정상원이야.”
“조심해서 가거라.”
마지막 거북 하나가 파닥거리며 상원의 손에 매달렸다. 
“저는 해수거북님 옆에 있을래요.”
상원이 알아들을 리가 없다. 그래도 눈치는 빨랐다.
“왜? 가기 싫어? 그래도 가야 해. 너희는 바다에서 살아야 하니까.”    
상원은 혼잣말을 하며 마지막 거북까지 억지로 놓아 주었다. 꼬마 거북 다섯 마리가 한자리에서 맴돌다가 천천히 바다로 돌아갔다. 
혼자 남은 해수는 얼떨떨했다. 꼬마 거북들이 사라져서 겁이 났다. 해수는 순간 등껍질 속으로 목을 숨겼다.
“상원아, 이제 저 큰 거북을 옮기자꾸나.”
“삼촌. 우리 힘으론 못 해요.”
혼자가 된 해수는 대나무 그물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순배는 어떻게 거북을 데리고 갈지 방법을 궁리했다. 결국 가우섬으로 들어가서 청년 두 명을 데리고 왔다.    
청년들은 해수를 보자마자 눈을 부릅떴다.
“우와. 거북이 엄청 크네.”  
“이렇게 큰 거북을 잡아도 되나요? 용왕님한테 벌 받을 거 같은데.”       
“정 사장은 이걸 꼭 학마을로 데려가야 한대요?”
청년이 묻자, 순배가 한마디했다. 
“어쩌겠어. 어장 주인의 마음이지. 나는 그 뜻을 따라야 하는 거고.”        
젊은 남자 셋이서 해수를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해수는 얌전하게 돛배에 실려 갔다. 기우뚱거리던 돛배가 마을 앞 농어바위에 와 닿았다. 해수는 농어바위 옆에 펼쳐진 모래밭에 조심스럽게 놓여졌다.
해수를 지켜본 정 사장은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순배! 어디로 도망가지 못하게 자네가 잘 지키게나.”  
“예.”
“바다에서처럼 모래밭에다 대나무 발을 둘러쳐 두고.”
“알겠습니다.”
소문을 들은 학마을 사람들이 해수를 구경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우와, 거북이 엄청 크다!”  
“어쩌다 이리로 잡혀 왔을꼬?”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가면 해수는 싫다는 듯이 두 팔로 날갯짓을 했다. 그때마다 모래가루가 사람들이 서 있는 곳까지 날아갔다. 
“어머머! 저것 좀 보소.”
사람들이 뒤로 물러섰다. 아무도 해수 곁으로 선뜻 다가가지 못했다. 
해수는 고통스러웠다. 두 날개를 파닥일 때마다 계속해서 모래알이 눈으로 들어왔다. 상원은 눈물을 흘리는 해수를 보면서 울상을 지었다. 
그날 밤 상원은 정 사장 방으로 찾아갔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왜 그리 숨이 넘어가는고?”
“거북이 울었어요.”
“울다니?”
“모래알이 계속 눈으로 들어가나 봐요.” 
상원은 울먹이며 정 사장에게 떼를 썼다. 
“할아버지, 모래밭에다 거북이 두지 마세요.”
이번에는 정 사장이 상원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날 정 사장은 순배를 불렀다. 
“거북이 모래 때문에 눈물을 흘린다는구먼. 다시 자리를 옮겨 주게나.”
“어디로요?”  
“음. 어디가 좋겠는가?”
“글쎄요.” 
순배는 적당한 곳이 떠오르지 않았다. 정 사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두 눈을 끔벅끔벅했다. 그러다가 손바닥으로 무릎을 탁 쳤다.  
“마을 옆길로 쭈욱 가면 바닷가 절벽에 굴이 있지 않은가?”
“기눅굴 말인가요?”
순배가 물었다.
“그렇지. 거기에다 저 녀석을 넣어 두게.”
기눅굴은 바닷가 바위 절벽들 사이로 깊숙하게 패여 있는 굴이다. 굴 안에 큰 웅덩이가 있었다. 밖에서 굴 안이 훤하게 잘 보였다. 바닷물이 빠지면 사람들은 그곳을 드나들기도 했다. 비나 눈을 피할 수 있어서 아이들도 그 굴에서 자주 놀았다.
“예, 알겠습니다.”
정 사장은 아들을 불렀다.
“용식아, 너도 나가서 순배 좀 도와라.”
모래밭에서 웅덩이로 옮겨진 후에도 해수는 꿈쩍도 하질 않았다. 헤어진 꼬마 거북들이 걱정되어 마음이 불안했다. 바닷물이 촐랑거려도 꼼짝 않고 헤엄도 치지 않았다.     
기눅굴에서 지내는 해수의 소식은 물에 떨어진 물감처럼 빠르게 퍼져 나갔다. 학마을에서 지서로, 지서에서 다시 경찰서로, 경찰서를 거쳐 도청까지 소문이 퍼졌다.
소문과 함께 기눅굴에는 날마다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 그 중엔 낯선 사람들도 있었다. 모두들 놀라서 입을 쩍 벌리며 감탄사를 뱉어냈다.
“참말이네. 거북이 평상만 하구먼.” 
“그러게, 아주 왕거북이구먼.”   
“정말, 크긴 크네.” 
정 사장은 사람들에게 상원이 했던 말을 고쳐 말했다. 용왕이 아닌 용왕의 심부름꾼으로. 
“허어, 거북이 바다 용왕님 심부름을 왔었나 봅니다.”         
은근히 자랑을 늘어놓은 정 사장이 말을 이었다.
“저런 거북이 내 어장으로 찾아왔다는 게 믿기질 않네요.”  
마침내 해수의 소식은 신문사에도 알려졌다. 신문에는 해수의 얼굴이 유명한 배우처럼 크게 실렸다.


5. 해수의 소문
한여름도 지났는지 무더위가 한풀 꺾인 듯했다. 아침저녁으로 산들바람이 불었다. 면사무소 일을 마친 용식의 손에 신문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아버지 정 사장에게 보여주려고 들고 온 거였다. 
신문을 본 상원이 용식에게 물었다.
“아버지, 신문에 거북이 나왔어요?”
용식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고는 신문을 정 사장 앞으로 내밀었다. 
“여기 좀 보세요.”
돋보기를 찾아 쓴 정 사장은 신문을 받아들었다. 
“어디 보자.”
상원이 할아버지 곁으로 다가갔다.
“이 신문엔 거북이 대문짝만 하게 나왔구나!”
“할아버지, 거북이 울고 있는 것 같아요.”
정 사장은 상원의 생각과 달랐다.  
“나는 점잖게만 보인다.”
정 사장은 흐뭇하게 웃었다.
1949년 8월 29일자 D일보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렸다. 해수에 관한 글이었다.   

강진군 도암면 앞바다에 바위뗑이 같은 큰 거북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주민들은 이를 신귀라고 부르며 정부 수립 1주년을 맞이한 대한민국의 길조를 표증하는 것이라며 큰 화젯거리가 되고 있다. 이 거북은 길이가 6척(2m 정도), 넓이가 5척(1.7m 정도),무게는 300여 근(180kg)이나 되며 적어도 천년 이상은 살아온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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