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읍의 역사를 오롯이 품은 마을

 

강진읍의 동쪽 중심마을이다. 강진의 역사를 오롯이 담고 있는 마을이다. 조선시대에 관용창고가 있어서 고내(庫內)라 불렀다고 한다. 관용창고는 세금으로 걷은 벼를 저장하는 곳이었다.

마을은 읍내 중심부와 가깝다. 주민들이 시장을 이용하는 것이나 기타 상가에 가는 일,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게 불편하지 않아 자가용이 없어도 편한 마을로 통한다. 
 

오래된 슈퍼마켓이다.
오래된 슈퍼마켓이다.
골목길이 깨끗이 정비돼 있다.
골목길이 깨끗이 정비돼 있다.

 

전체적으로 옛 강진읍성 터 위에 집들이 많이 지어졌다. 그래서 여름이면 남쪽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겨울에는 북쪽 보은산이 막아준다. 때문에 날씨가 평온하다고 마을사람들은 자랑한다.  

오래전 관용 창고 옆에 감옥이 있었다. 그 옆에 샘이 있었는데 옥샘이라 불렀다. 과거에 마을내에 공동우물이 5군데 있어 이를 식수로 활용했지만 상수도 보급 이후에는 활용되지 않아 대부분 매립돼 버렸다.

현재 마을내에 새마을금고가 위치하고 있고 동성리 329-2번지에 있었던 모란다방 자리가 일제강점기 시대에는 상업은행이 있었던 터였다. 1942년 상업은행 강진지점이 설치됐다가 이후 1950년 조흥은행이 이를 인수해 운영되다가 1955년 폐점됐다.

오래된 집과 새집이 공존한다.
오래된 집과 새집이 공존한다.
극장통의 고내마을 구역이다.
극장통의 고내마을 구역이다.

 

1789년 호구총수의 기록에 의하면 현내면 26개 마을중 한 마을로 고내리라는 지명이 보인다. 조선시대때부터 한 개의 행정마을로 존재했었음을 알 수 있다.

그후 1912년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도 고내리라는 마을지명이 나타나고 1914년 일제강점기때 행해진 행정구역 개편으로 고내마을은 동문리와 병합해 동성리에 속하게 됐다.

옛 강진의원건물이다.
옛 강진의원건물이다.

 

이후 1982년 고내마을이 고내와 동명으로 분할되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분할 당시 개울을 중심으로 마을이 나뉘었기 때문에 마을이 전체적으로 동서로 긴 모양을 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강진중학교까지가 고내마을이고, 서쪽으로는 소위 극장통이라 불리는 곳의 우측상가까지 포함된다. 북쪽으로는 한국국토정보공사(옛 지적공사) 앞 도로 남쪽 지역에서 시작해 동서빌라 앞에서 우회전해서 내려가면 된다. 현재 마을에는 330세대에서 약 500여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주희춘 기자

저작권자 © 강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