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남호마을의 다른 이름은 성머리마을이다. 만리장성, 마유성등으로 불리우는 석성(石城)이 남호마을 서편 바닷가에서 시작한다.

이 성은 건너편 구곡마을의 앞산을 지나 산너머 계치마을을 거친 다음 장흥 대덕을 관통해 회진까지 20㎞ 넘게 이어진다. 성의 끝마을은 장흥 회진의 성갯마을이다. 성과 갯벌이 만나는 지점이라는 뜻이다.

성의 흔적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큰 돌덩이들은 바다에 굴 양식장을 만드느라 많이 사용됐다. 다른 구간의 성터도 새마을운동 때 각종 축대를 쌓느라 많이 사라졌다.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은 것은 이 성의 기능에 대한 궁금증이다. 성의 모습은 마량을 완전히 포위하는 형국이다. 무언가를 막기위한 기능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추정할 수 있는게 말과 연관된 것이다. 조선시대 제주에서 마량으로 말들이 건너왔다. 배를 타고 온 말들이 마량에 도착하면 초주검이 되기 일쑤였다.

그래서 한양으로 가기 전 일정기간 육지에 적응하는 기간이 필요했다. 만리장성은 제주 공출마의 육지적응 훈련장이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말을 가둬 기르거나 훈련시킨 목장이었다면 굳이 튼튼한 석성을 만들 이유가 없다. 말은 겁이 많은 동물이다. 제주도에 가서 말목장을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목장을 두르고 있는 울타리는 목책 몇 개다.

제주도에 널려 있는 사설 승마 교습소나 승마 체험장등도 길다란 통나무를 걸쳐서 만든 목책 울타리가 전부다. 조랑말을 기르기 위해 높이 2m, 폭 1,5m에 이르는 석성을 쌓았다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성을 군사목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마한시대 강진을 지배하던 한 부족국가의 성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하지만 해안에서 군사목적의 성을 쌓을 경우 바다의 적을 막기 위해 바다를 향해 쌓는게 상식이다.

그러나 이 성은 북쪽을 향해 곡선모양으로 서 있다. 무엇보다 마한시대 성의 전형은 흙성이다. 이렇듯 만리장성은 풀리지 않는 수수깨끼다.

석성의 전설이 숨쉬는 남호마을에 신규마을이 조성된다고 한다. 첫 삽을 어그저께 떴다. 석성의 출발지가 지척인 곳이고, 남쪽으로 시원한 바다가 조망된다.

이곳에 16세대가 들어온다고 하니까 큰 마을이 생기는 셈이다. 예부터 성밟기를 하면 액운이 물러난다고 했다. 성머리마을에 들어서는 새 마을이 성의 기운을 가득 받길 바란다.<주희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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