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뜰이 훤히 내다보이는 전망 좋은 자리

마을의 서쪽이다.
마을의 서쪽이다.

 

칠량면소재지에서 칠량초등학교 앞을 지나 이어지는 포장도로를 따라 찾은 곳은 칠량면 운산마을. 면소재지의 주산인 호암산 자락에 남향으로 아늑하게 자리한 운산마을은 인근 연곡, 영계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촌락을 이루고 있다.

마을 앞으로 영동리 앞들이 한눈에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마을이다. 뱀이 엎드려있는 모습이라 전해지는 일명 복사동을 중심으로 마을을 이룬 운산마을은 구름 속에 달이 숨어 있는 형국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마을회관으로 향하는 진입로다.
마을회관으로 향하는 진입로다.

 

이런 마을의 형국을 바탕으로 현재의 마을명도 정해진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운산마을은 1789년 호구총수에 기록된 칠량면 28개 마을에는 나타나지 않고 1912년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는 칠량면 40개 마을 중 한 마을로 기록돼 있다.

마을에서 전하는 바에 따르면 예전에는 현재의 마을 위치까지 바닷물에 잠겨 있었으며 조선후기에 집중적으로 간척지가 생겨나면서 농경지를 따라 농가가 증가하고 운산마을이 형성됐다. 이를 증명하듯 복사동 옆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배를 메어두었다고 전해지는 배멧부리라는 지명이 남아있다.

골목이 많다.
골목이 많다.
마을의 동쪽이다.
마을의 동쪽이다.

 

마을 뒤편으로 호암산이 위치해 있고 앞쪽으로 바다가 있었던 자연환경 때문에 운산마을은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장소다. 마을 곳곳에는 청동기 시대의 유물인 고인돌이 산재해 있었다. 특히 복사동 근처에 10기의 고인돌이 모여 있었지만 현재는 대부분 경지정리로 파괴되거나 땅 속에 파묻혀진 상태다.

마을에는 차씨들이 터를 잡고 거주했던 마을에서 따온 차동, 운산마을과 영동마을 사이의 들녘을 일컫는 줄아들, 마을 앞쪽의 들녘을 지칭하는 번짓들, 인근 신암마을과 경계가 되는 들을 말하는 굽은서리들, 예전 서당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서당터, 복사동에 위치해 있으며 예전 장례 풍습에 따라 초분을 지었던 골짜기인 초분골 등의 지명이 주민들 사이에 구전된다.   

마을 회관 옆 집이다.
마을 회관 옆 집이다.

 

운산마을로 들어가는 입구 2곳에는 마을출신 김현장씨가 세운 마을표지석이 있다. 지난 82년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을 주도했던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김씨는 어려운 여건에서도 남다른 애향심을 나타냈다. 

김씨는 지난 98년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한시를 마을표지석에 새겨 기증했으며 지난 2000년에는 벚꽃나무 200그루를 마을에 전달했다. 마을주민들이 힘을 모아 마을 입구 2곳에 나눠 심은 벚꽃나무는 매년 봄이면 어김없이 하얀 꽃망울을 터뜨려 마을의 운치를 더하고 있다. /주희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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