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수/ 광주전남지역 혁신플랫폼 총괄운영센터장

사람은 만남으로 자란다고 한다. 이처럼 와닿는 말이 또 있을까. 읽어 보면 읽어 볼수록 참으로 공감이 가는 명언이 아닌가 싶다.

이말은 일찍이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에서 일생을 바친 유달영 교수가 즐겨 썼다고 한다. 필자는 그분이 붓글씨로 정성스럽게 써서 만든 액자를 어렵사리 확보해 필자의 책상에 놓고 틈날 때마다 즐겨보고 있다.

여러모로 힘들었던 지난 1960년대, 유달영 교수는 ‘한국의 달가스’라고 불리곤 했다.

엔리코 달가스는 덴마크 유틀란트 반도의 모래 언덕을 가득한 젖과 꿀이 흐르는 옥토로 바꾸는데 앞장섰던 사람이다. 황폐한 국토를 부흥시키는 데는 바로 달가스의 나무 심기와 농민운동이 크게 기여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국의 유 교수 또한 농민운동에 평생을 바친 인간 상록수로서 달가스처럼 모국을 위해 헌신했다. 그분은 새마을운동의 전신인 국가재건국민운동본부자을 맡아 최선을 다했지만 아쉽게도 기대한 만큼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아마도 유 교수의 열정을 당시 박정희 정부가 제대로 뒷받침해 주지 못한 탓이 아닐까 싶다.

이 지구상에는 모래알처럼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으나 우리가 보는 것처럼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각자 퍼스낼리티가 다르고 생김새 또한 같지 않다. 그래서 우리 사람은 서로 다름을 깜싸 안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이 아니던가.

혼자 살지 못하고 사람인(人) 한자처럼 둘이서 지탱을 해주어야 비로소 사람으로서 주어진 소임을 다 해 나갈 수 있으니까 말이다.

태초에 아담과 이브는 뜻을 같이하면서 가정이라는 조직에 들어가 구성원으로서 생활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처럼 우리 사람들은 나름대로 조직 생활을 하면서 부대끼는 과정에서 모난 부분은 둥글게 되며 힘들지만 서로 배우게 된다. 이를테면 우리는 커나가면서 상대방으로부터 삶의 지혜를 터득하게 되는 셈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과정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기억해 보면 오늘의 나를 있게 만든 분들에게 한없는 감사를 드리고 싶다. 그때는 섭섭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오늘따라 잊히지 않는 그분이 생각난다.

필자가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인 은행에 입사했을 때의 일이다. 그때는 아침에 출근하면 아침마다 출근부에 도장을 찍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출근부가 하필이면 지점장 책상에 놓여있으니 얼마나 부담스러웠겠는가. 게다가 호랑이처럼 느껴진 지점장님이 제일 먼저 출근해서 앉아 있으면서 인사를 받고 있으니까.

어느 날이었다. 얼떨결에 호주머니에서 도장을 꺼내 출근부에 얼른 찍고 돌아나오는데, 내 이름을 부르셨다. 이유인즉, 도장이 삐뚤어지게 찍혀 있으니 다시 바로 찍으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다. 하루의 첫출발인 만큼 똑바로 찍고 올바른 자세로 근무에 임해야 한다고.

그래서 그 다음날부터는 정성을 다해 조심스럽게 도장을 바로 찍으며, 하루를 흐트러짐 없이 생활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도장을 찍을 때면 지점장님이 주신 한마디가 교훈처럼 잊히지 않는다.

비록 그분은 작고하셨지만, 현역 시절 선동열 투수 못지않게 유명세를 탔던 야구 선수이었다. 은퇴 후 은행에 들어와서 점포장으로 훌륭한 성과를 냈으며, 후덕한 모습답게 덕장으로 주위로부터 존경을 한 몸에 받던 분이었다.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커 온 오늘의 자신을 되돌아 보며 이분들께 고마움과 존경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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