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청류, 한골목, 은행나무… 병영역사 오롯이 간직하다

 

병영면 소재지 하멜전시관 뒤편에 있는 마을이다. 면소재지에서 수인산 방면으로 1㎞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상가와 도로가 발달돼 있다.

병영성의 동편에 위치한다고 하여 불린 동성마을은 지금으로부터 500여년전 김해김씨가 최초 입촌해 마을을 형성했다고 한다.

이후 여러 성씨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면서 현재 마을에는 김해김씨, 밀양박씨, 전주이씨, 남평문씨 등 20여개 성씨들로 구성되어 있는 가운데 50가구 90여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마을의 북쪽이다.
마을의 북쪽이다.
넓은 병영면소재지가 펼쳐져 있다.
넓은 병영면소재지가 펼쳐져 있다.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돌담길을 따라 마을회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마을회관에는 마을주민 서너명이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백발이 성성한 주민들의 모습에서 인생의 관록을 엿볼 수 있었다.

천연기념물 제385호로 지정되어 있는 은행나무는 마을중앙에 우뚝 솟아 마을의 상징목이 되어 있었다. 높이 30m, 둘레6.75m 정도의 은행나무는 800여년의 수령을 자랑하고 있다.

나무 폭 또한 동쪽으로 16.5m, 서쪽으로 13m, 남쪽으로 10.9m, 북쪽으로 3.5m나 뻗어 있어 웅장함을 느낄 수 있다.

적벽청류가 있는 병영천이다.
적벽청류가 있는 병영천이다.
한골목이 길게 이어진다.
한골목이 길게 이어진다.

 

주민들에 따르면 옛날 은행나무의 부러진 나뭇가지로 목침을 만들어 사용한 병마절도사가 잠을 자다 그날로 병이 나서 신음하게 되었다고 한다.

유명한 의원들조차 병의 원인을 알아내지 못했다고 한다. 이후 병마사가 은행나무에 목침을 다시 붙여 넣고 제사를 올리자 병이 나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현재도 은행나무 고목을 살펴보면 목침덩이가 들어 있는 듯이 불룩해진 곳을 볼 수 있었다.

또 은행나무 아래에는 가로 3m, 세로 3m, 높이 80㎝ 크기의 고인돌 5기가 자리하고 있는데 지난 1656년 하멜 일행이 병영에서 생활하는 동안 휴식을 취했던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마을옆 하천에 빨래터가 있다.
마을옆 하천에 빨래터가 있다.

 

동성마을 안자락에 위치한 적벽청류는 일망대 밑에 있는 절벽으로 바위층과 그 앞을 흐르는 천을 일컫는다. 일망대는 마을을 바라보고 있는 봉우리로 일출·일몰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라 하여 부른 지명이다.

또 한편으로 마을주민들은 이곳을 일본이 망한다는 설에 따라 일망대(日亡臺)라고 불렀다고 한다. 적벽에는 적벽청류(赤壁淸流)라는 명문이 새겨있다.

문씨를 비롯해 마을주민들에 따르면 누가, 언제 이곳에 글귀를 새겼는지 알 수 없으나 예부터 이곳에서 병사들을 비롯한 관리들이 풍류를 즐겼던 곳이라는 것만이 전해져 오고 있다.     /주희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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