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농촌체험마을 선정으로 마을의 새로운 소득원 발굴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 병영면 도룡마을. 병영에서도 그리 크지 않은 작고 조용한 마을이다. 마을이 장흥으로 연결되는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다보니 교통은 좋지만 마을 주변에 농토가 부족한 마을이었다.

농토가 부족하다보니 농사를 짓기도 힘들었고 부와는 거리가 멀었던 마을이었다. 마을 주변에 있는 농경지도 상당부문 다른 마을 사람들 소유로 그들이 농사를 짓고 있어 실제 도룡마을 주민들은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이때문인지 마을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상업에 종사하곤 했다.

내가 학교에서 정년퇴직을 한 이듬해였다. 2002년 1월 무렵이었는데 그때 마을주민들이 나에게 이장을 맡아달라고 해 이장을 맡게 됐다. 이때 가난한 마을을 위해 무엇인가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주민들의 소득을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이때 강진군농업기술센터에서 녹색문화대학 수강생을 모집했는데 그 강의를 듣게 됐다. 서울대 교수가 강사로 나서 농촌에 필요한 다양한 교육을 해주었는데 이 곳에서 녹색농촌체험마을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 마을에 선정되면 국비가 지원돼 마을에서 소득을 위한 사업을 할 수 있었다.

나는 마을사람들에게 이 같은 사실을 알리고 의논을 해서 사업을 신청하게 됐는데 이 사업 선정을 위해 전국의 선진지라고 불리우는 마을을 찾아다니면서 여러 가지 사례들을 눈으로 보고 배웠다. 또 TV에서도 이런 마을이 나오면 유심히 살펴보고 배울점을 찾기도 했다. 이렇게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지만 첫해에는 사업선정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가난한 마을을 위해서 꼭 필요한 사업이라는 생각에 마을주민들을 설득시켜 다시 그 이듬해에도 사업을 준비하게 됐다. 이때 나는 와보랑께박물관과 연계시켜 다양한 농촌 체험을 할 수 있는 사업들을 구상해 계획서를 제출했고 다행스럽게 사업에 선정됐다.

이때 사업 선정으로 2억원이라는 기금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됐다. 나는 마을사람들과 의논을 한 끝에 도시민들이 마을을 찾아와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인 체험관과 숙박을 할 수 있는 민박시설까지 건물을 지었다.

이렇게 민박과 체험관이 마을에 들어섰고 이를 인터넷 홈페이지와 방송매체를 통해 홍보하게 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됐다. 이때만 하더라도 강진에 농촌체험과 민박을 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다. 덕분에 마을에는 도시에서 찾아온 사람들이 크게 늘어났고 이때 1년에 체험과 민박시설 운영 등으로 1년에 1천만원이상의 소득을 올리게 됐다.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선정되기 이전에는 마을자체에 소유한 토지에서 나오는 수익외에는 뚜렷한 수익원이 없다보니 마을기금은 넉넉하지 못했다. 하지만 체험마을이 되면서 체험과 숙박 등으로 많은 수익이 생겨나면서 마을주민들에게 그 혜택이 돌아갔다. 

최근에는 강진 관내에도 여러 체험마을들과 푸소, 민박 시설들이 늘어나면서 전보다는 방문객들은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연간 적지 않은 소득을 올리며 마을주민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어 아직도 보람을 느끼고 있다.

마을 전체적으로 좋은 일이었지만 나는 건강이 악화되는 계기가 됐다. 사업을 추진하면서 여러 가지 스트레스를 받다보니 갑자기 뇌경색 증세가 나타나 병원에 입원해 약 20일정도 치료를 받기도 했다. 지금은 거의 완쾌돼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없지만 지금도 정기적으로 관리를 하고 있다.          <정리=오기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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