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리마을 병술년생 52명… 김한진회장 작고하며 4명 남아

강진읍 목리마을에는 1946년생이 52명이었다. 그해가 병술년이라 ‘목리 병술생들’이라 불렸다. 남자가 47명, 여자가 5명이었다.

최근 동광전업 김한진 회장이 작고하면서 이제 마을에 4명이 생존해 있다고 한다. 올해만 4명이 세상을 떠났다. 세월의 빠른 흐름을 ‘목리 46년생들’이 전해주고 있다.

한 마을에서 동갑내기들이 52명이나 된 것은 목리마을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셋방에 사는 사람들까지 합해 400세대를 웃돌았다. 한 세대당 평균 가족수가 5명이나 되던 때라 많을 때 마을인구가 2천명이 넘었다. 

해방된 그 다음해 목리마을에 신생아들의 울음소리가 쏟아졌다. 한집 건너 마당 빨래줄에 새하얀 기저귀감이 태극기처럼 휘날렸다. 생일이 대부분 7월 이후였다. 그러니까 1945년 8월 15일 해방된 직후 잉태된 진정한 해방둥이들이었다.

강진읍의 한 주민은 “목리마을 사람들은 해방의 벅차 오르는 기쁨을 이불속에서 마음껏 누렸던 것 같다”고 웃었다.

동갑내기가 52명이나 되면서 재미있는 일도 많았다. 학교 운동회를 하면 목리마을 잔치였다. 엄마, 아부지, 동생들, 할머니등 학생 한 명당 7~8명이 학교로 몰려 들었다. 소풍을 가면 목리마을 어른들이 줄을 지어 따라갔다. 

52명중 여자가 5명 있었지만 혼인을 맺은 사람은 없었다. 나이도 같고, 학교도 같이 다녔지만, 여자들이 남자들을 동생 대하듯 했다. ‘에리게’ 봤던 것이다. 그래서 목리마을 청년들은 주로 남포, 도원, 추도리, 평동, 비자동 여학생들과 연애를 했다.  

‘목리 병술생들’이 군대 갈 나이가 됐다. 1967년에는 한꺼번에 27명이 논산훈련소에 들어갔다. 이중 딱 한명이 월남전에서 사망했고, 나머지는 건강한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성장해서 결혼하고 자식낳고, 키우며 열심히 살았다.

목리마을 손홍식(46년생) 회장은 “동갑내기들과 재미있게 살았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흘러간다”며 “살아 온 날들이 그저 모든게 감사할 뿐”이라며 미소지었다. /주희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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