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아 우리 거북이들은 이 바다에서 아주 오랫동안 살아 왔단다

“좀 전에 왔어요. 오늘 출발하나요?” 
해수는 모여 있는 엄마 거북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곧 알을 낳으러 갈 거예요.”
‘아, 그렇다면.’ 
해수는 엄마 거북들을 따라 함께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 거북들이 위험하지 않게 지켜 주고 싶었다.
‘내가 제때에 딱 맞춰 도착했군.’   
해수는 다시 힘이 솟았다. 오랜 시간 바다를 헤엄쳤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꼬마 거북들이 해수 가까이 다가왔다. 
“해수거북님, 저희랑 같이 놀아요.” 
“아니다. 난 모래밭으로 갈 거란다.” 
엄마 거북들과 함께 갈 거란 말에 꼬마 거북들이 덩달아 나섰다.
“저도 같이 가면 안 되나요?” 
“저도요.”
“저도 데려가 주세요.” 
꼬마 거북들 몇이서 해수를 졸랐다. 그러자 해수가 꼬마 거북들에게 물었다.
“아주 멀리까지 가야 하는데, 너희들 헤엄은 오랫동안 칠 수 있겠니?” 
“그럼요.” 
꼬마 거북 하나가 짧은 뒷발을 쭉 뻗었다.    
“저도 자신 있어요.”  
꼬마 거북들이 앞발을 날갯짓하듯 펄럭였다. 귀엽고 예쁜 앞발로 해수의 목을 비벼댔다. 해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물었다. 
“누구누구 갈 거니? 이리 모여 봐라.” 
하나, 둘, 셋, 넷, 다섯. 
꼬마 거북들 다섯이 해수 옆으로 모였다. 
“너희에겐 여기가 안전하고 좋을 텐데…….”
“그래도 따라갈래요.”
“가고 싶어요.”    
“그러면 가는 길에 상어를 조심해야 해. 상어가 너희들을 보면 당장 달려들게야.” 
해수는 꼬마 거북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조심할게요.”
“상어는 힘이 워낙 강해. 턱으로 너희 등딱지를 깨문 후 입으로 꿀꺽 삼켜 버린다. 절대 공격하지 말고 피해야 한단다.” 
바다거북들도 힘은 좋았다. 싸우기도 잘했다. 그래도 더 강한 적을 만나면 어쩔 수 없었다.
그때 어느 꼬마 거북이 큰 소리로 말했다.
“아니죠! 맞서 싸워야죠.” 
해수의 눈 사이 비늘이 사르르 떨렸다. 놀라거나 안 좋은 느낌이 들 때면 늘 그랬다. 해수는 그 꼬마 거북을 잠시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다.
“꼭 싸워야 한다면 그래야지. 하지만 때로는 싸우지 않는 게 이기는 때도 있단다.”
해수는 잠시 숨을 고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헤엄치면서 바닷속에 그물 덫이나 올가미가 있는지도 잘 살펴야 한다.”
“예, 해수거북님.”
날이 서서히 어두워졌다. 엄마 거북들의 말소리가 소곤소곤 들려왔다.    
“준비 됐나요?”
“네, 준비 됐어요.”
“자, 이제 우리들이 태어났던 곳으로 다시 돌아갑시다.”
마침내 엄마 거북들이 출발했다. 엄마 거북들은 알을 낳으러 가는 길을 잘 알고 있었다. 산호초 우거진 숲을 지나 조심조심 앞으로 헤엄쳐 나갔다. 해수와 다섯 꼬마 거북들도 그들의 뒤를 따랐다.
바닷속은 캄캄했다. 한참 후 바다가 끝나고 모래밭이 나타났다. 하늘 높이 떠오른 둥근 달이 모래밭을 환하게 비춰 주었다. 앞서가던 엄마 거북들이 먼저 모래땅을 밟았다. 엄마 거북들은 모래 언덕을 향해 열심히 기어올랐다. 밟고 지나간 모래 발자국들이 가지런하게 새겨졌다.
해수는 모래 언덕까지 오르진 않았다. 아래쪽 모래밭에서 엄마 거북들을 기다렸다. 그는 꼬마 거북들에게 붉은바다거북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얘들아, 우린 이 바다에서 아주아주 오래 전부터 살아왔어. 공룡과 함께 살기도 했단다.”
“와! 조상님이 공룡하고도 살았어요?”
“응, 맞아. 공룡.”
해수는 ‘공룡’이란 말에 힘을 주었다. 
“해수거북님, 우린 공룡을 본 적이 없어요.”
“당연하지. 지금은 없으니까 안 보이는 거야. 갑자기 추워져서 그랬는지 모두 사라졌어. 조상님들은 다행히 살아남았지만.” 
“우리 조상님 최고!”
해수의 이야기를 들으며 신이 난 꼬마 거북들은 계속 빵글거렸다. 그러면서 엄마 거북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1949년 8월 무렵이었다.
 

그림 강화경
그림 강화경

 

3. 길 잃은 거북들
모래 언덕에 도착한 엄마 거북들은 이리저리 적당한 자리를 찾느라 바빴다. 알 낳기 좋은 곳을 골라야 했다. 바다가 가까우면 귀한 알들이 바닷물에 쓸려 갈 위험이 있다. 바다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모래 언덕도 좋지 않았다. 태어난 아기들이 바다까지 가려면 거리가 짧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바다에서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적당한 모래 언덕을 찾아 알 낳을 준비를 했다.
팔월 여름이지만 밤이라서 크게 덥지 않았다. 달빛과 별빛이 숭숭 쏟아졌다. 엄마 거북들은 앞발에 달린 물갈퀴로 구덩이를 팠다. 미처 모래 언덕까지 못 올라간 엄마 거북은 그 자리에서 모래 구덩이를 쓱쓱 파냈다. 배딱지와 콧구멍에 모래가 얼룩덜룩 묻기 시작했다.   
해수가 꼬마 거북들에게 속삭였다.  
“잘 살펴보렴. 너구리가 나타날 수도 있으니까.”
“그땐 우리가 빨리 달려가 막아야겠죠?” 
“그렇지.”  
너구리가 나타나 엄마 거북을 공격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금방 낳은 알을 빼앗으려는 거였다.    
엄마 거북들은 발을 번갈아 가면서 모래 구덩이를 팠다. 자기 몸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크게, 더 크게 팠다. 
“이 정도면 될까?”   
“아냐, 알을 많이 낳아야 하니까 더 커야 해.” 
알을 많이 낳는다 해도 그 알이 모두 아기로 태어나진 못한다. 엄마 거북들은 그걸 잘 알고 있었다. 
“무조건 알을 많이 낳아야 해.”
점점 줄어드는 붉은바다거북 때문에 엄마 거북들은 알을 많이 낳고 싶어했다.  
“난 백오십 개 이상.” 
엄마 거북들의 말소리가 달빛을 타고 들려왔다.   
“이백 개까진 안 되겠지?”  
“그건 욕심. 뭐, 최선을 다 하면 되는 거지.”
모래 구덩이에 알들이 빼곡히 채워졌다. 하얀 알들이 모래 구덩이에서 반들반들 반짝였다.
엄마 거북들은 그 알들 위에 모래를 가득가득 덮었다. 알들이 보이지 않게 정성스럽게 다독였다. 
“꼭 살아 돌아오너라.”
“갈매기나 뱀의 먹이가 되지 말고…….”
알을 낳은 엄마 거북들은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다. 두어 달쯤 후면 풍덩풍덩 바다로 뛰어들 새끼 거북들! 그땐 반갑게 맞아 줘야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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