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구열이 높은 마을… 면장만 4명이나 배출

 

벽송마을은 강진읍에서 칠량방면으로 8㎞정도를 가다보면 좌측으로 칠량면 동백리에 속한 현천, 동백, 벽송마을을 가리키는 대형 표지석이 있다.

표지석을 따라 1㎞를 더 들어가면 세 갈래의 길이 나오는데 좌측으로 가면 예부터 양반 촌이라고 소문이 자자했던 벽송마을을 만날 수 있다. 

벽송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맨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깨진밖이라고 불리는 진입로에 놓인 5~6개 남짓의 대형 바위들이었다. 고인돌이라고 보기에는 크기가 너무 컸고 그냥 바위를 모아두었다고 하기에는 그 의미가 궁금했다.
 

남쪽이 시원하게 열려있다.
남쪽이 시원하게 열려있다.
마을입구에 바위가 있다.
마을입구에 바위가 있다.

 

바위가 놓여 있는 곳이 깨진밖이라는 곳인데 예부터 마을 밖에 깨진 바위가 있어 깨진밖이라고 불렀다. 지금 바위가 많은 것은 마을 진입로 공사를 하면서 바위를 모아 놓은 것이다.

주민들에 따르면 벽송마을에는 1612년부터 해남윤씨 입향조인 윤호찰(1612~1685)이 서당을 개설한 이래 해당직후에 야학에 이르기까지 한문과 한글을 주민들에게 가르쳤다. 이에 벽송마을 주민 대부분이 한글을 읽고 쓸 수 있을 정도로 학구열이 높은 마을이다.

마을의 북쪽이다.
마을의 북쪽이다.
한옥이 많다.
한옥이 많다.

 

학구열이 높은 벽송 마을은 유독 공직자를 많이 배출했다. 민선 초대 강진군수를 지낸 고 김재홍 씨를 비롯해 고 윤상하 초대 면장, 고 윤옥현 9·10대 면장 등 4명의 면장 등을 배출해냈다.

이만큼 벽송마을의 주민들은 항상 일하고 배우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던 것이다. 마지막 5.18수배자 윤한봉 선생과 명고수 김성권 선생이 이 마을 출신이다.  

윤한봉 선생 생가다.
윤한봉 선생 생가다.
마을을 아름다운 산들이 감싸고 있다.
마을을 아름다운 산들이 감싸고 있다.

 

해남윤씨 제각이 눈에 띤다. 보통 제각이라하면 고풍스러운 한옥구조를 띄고 있는게 일반적이었지만 벽송마을의 해남윤씨제각은 다른 제각과는 달랐다. 일단 구조가 가옥의 형태가 양옥이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해남윤씨제각은 일제강점기 초부터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집으로 지어져 있었으나 노후화로 허물고 지금의 양옥으로 개조해 해남윤씨 시제를 지내오고 있다.

해남윤씨제각을 나와 마을 우측에 자리한 함등으로 발길을 돌렸다. 함등은 큰 배의 형국이라고 해서 이 곳에 샘을 파면 배가 가라앉는다는 전설이 있다. 이에  함등에서는 배에 구멍이 난다고 해 과거에는 샘을 파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주희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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