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시작한 매실재배, 매화축제까지 이어져

이번호에는 매실을 재배하며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는 병영으로 돌아온 이후 와보랑께박물관을 운영했는데 학교에서 근무를 하면서 부업으로 과수농장을 운영했다. 과일은 바로 매실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30여년전 처갓집이 광양 매화마을이었는데 어느 날은 봄철에 그곳을 찾게 됐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겠지만 광양 매화마을은 매년 봄이면 화려하게 피어나는 꽃으로 인해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축제도 펼쳐지는 마을이다.

나도 처갓집을 봄에 찾으면서 그 광경을 목격하게 됐는데 그야말로 그림같은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모습에 반해 나는 그길로 장인어른에게 매실나무를 심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해서 매실나무 묘목 약 200주 정도를 병영으로 가져와 심었는데 나무를 심은 자리가 바로 현재 와보랑께박물관 건물이 있는 이 부근이었다. 이때만 하더라도 병영에는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감나무를 심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다. 

내가 알기론 강진군에서 처음으로 매실재배를 위해 나무를 심은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정도로 당시에는 강진에서 매실에 대해 아는 사람도 재배하는 사람도 없었던 때였다.

나무를 심고 약 3년정도 시간이 흐르고 봄에 꽃이 피었고 꽃이 지고 나서 매실이 열렸다. 사실 나는 매실나무를 심게 된 것은 소득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좋은 소재가 될 것 같다는 생각에서 나무를 심은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매실 판매에 대한 생각은 전혀하지 못했는데 우연인지 운이 따를려고 그랬는지 이때 MBC에서 ‘허준’이라는 드라마가 큰 인기를 누리고 있던 때였다. 드라마속에서 매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게 됐고 이때부터 매실이 큰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누가 구입해가는 사람도 거의 없었던 매실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 1㎏당 5천원까지 가격이 올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연히 지역에서 매실을 재배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매실주문은 폭주하기 시작했다. 물량을 다 소화해내지 못할 정도였다. 이때 주위에서는 매실이 인기가 있을 것이라고 어떻게 알고 나무를 심었느냐며 나에게 비결을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때부터 나는 매실 판매와 가공을 위해 강진군농업기술센터에서 운영하는 녹색문화대학을 신청해 교육을 받게 됐다. 그곳에서 나는 농산물 가공 방법과 판매 등에 대해 공부를 했고 농산물 가공에 대한 허가절차로 마무리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매실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가공을 통해 액기스와 장아찌 등을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약 10년정도는 매실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상당히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었다.

빛이 있다면 반드시 어둠도 있는 법. 매실의 가격이 높아지자 전국에서 매실나무를 심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고 결국 매실 가격은 폭락했다. 이때 나는 밭 1천여평과 논 1천여평까지 매실나무를 심었는데 직장생활을 하다보니 나무를 제대로 관리하기 어려웠던 데다가 가격까지 떨어지면서 논은 결국 포기했다.

지난 2006년에는 매화꽃 피는 시기에 맞춰 축제도 개최했다. 퀴즈를 통해 매실과 액기스 등을 선물하기도 했고 내가 소장하고 있던 민속품 전시도 함께 이뤄지면서 적지 않은 관광객들이 축제장을 찾기도 했다. 아직도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정리=오기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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