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물이 빠지자 갯뻘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런데… “저건 뭐야”

1949년 8월 도암면 송학리 앞바다에서 붙잡혀 전국적인 관심을 받은 ‘강진거북이’ 이야기가 김옥애 작가의 손을 통해 ‘경무대로 간 해수’라는 동화로 탄생했다.

강진거북이의 동화화는 지역의 소재가 전국화 될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준다. 강진 사람들이 가슴속에 담아두면 좋을 한 시대의 추억이자 서사시다. 책을 낸 청개구리출판사와 작가의 양해를 얻어 동화의 전문을 차례로 연재한다.   /편집자 주.
 

김옥애 동화작가는

강진읍 탑동마을에서 태어났다. 1975년 전남일보 신춘문예와 197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화로 당선됐다. 아동문학상과 소천문학상, 방전환문학상, 송순문학상 대상, 이주홍문학상등을 받았고 작품으로는 ‘그래도 넌 보물이야’ ‘봉놋방 손님의 선물’ ‘추성관에서’ ‘흰 민들레 소식’ 등의 작품이 있다. 현재 대구면 중저마을 가우도가 보이는 곳에 작은 집을 마련하고 저술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1. 대나무 그물
물살이 센 바닷가에 참나무 말뚝들이 줄지어 서 있다. 그 말뚝과 말뚝 사이에 대나무 발이 그물처럼 엮어져 있었다. 남쪽 바다 위 가우섬과 학마을 사이에 있는 V자 모양의 어장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물고기들은 빠른 물살을 타고 어장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러다가 바닷물이 빠져 나가고 나면 물고기만 남겨진다. 어장 안에 갇힌 물고기들은 사람들이 모두 거두어 갔다.  
어장 일을 하는 순배는 이른 아침부터 학마을 정 사장 집을 찾았다. 우락부락한 생김새인 순배는 무릎까지 올라온 장화를 신었다. 따가운 햇살을 피해 밀짚모자를 눌러 썼지만 얼굴이 검게 탔다.
“왔는가?”
어장 주인인 정 사장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순배는 무뚝뚝하게 찾아온 용건부터 꺼냈다.  
“사장님, 어장의 대나무 발이 너무 낡아서 큰일이에요. 물고기가 다 빠져 나가겠어요.”
“알고 있네. 다음 달에나 바꿔야지. 아쉬운 대로 잘 고쳐서 쓰고 있게나.”
정 사장 말에 순배는 아무 말도 못했다.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폭 내쉬었다. 
그때였다. 방학이라 방 안에서 뒹굴고 있던 상원이 순배를 보고는 쪼르르 달려나왔다. 그러고는 정 사장을 조르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나 삼촌 따라 어장 갔다 올래요.”  
“집에서 공부나 해라.”   
할아버지가 딱 잘라 말했다. 그런다고 물러설 상원이 아니었다. 더욱 성가시게 할아버지를 졸라 댔다. 
“갔다 와서 하면 안 돼요?”
정 사장은 끝내 손자를 이기지 못했다.
“그럼 조금만 놀다 오너라.”     
상원은 순배 뒤를 따라 나섰다. 서둘러 바다 위에 떠 있는 돛배 쪽으로 다가갔다. 순배가 먼저 돛배에 올랐다. 
“기다려, 순배 사~암~촌!” 
상원이 코맹맹이 소리를 냈다. 목소리에 어리광이 잔뜩 배어 있었다. 자기 집 일을 해 주고 있지만, 상원은 친 삼촌처럼 느끼며 의지해 왔다.
“탔냐?”
순배가 천천히 노를 저었다. 드디어 돛배가 어장이 훤히 보이는 가우섬 앞에 멈췄다. 배에서 뛰어내린 순배는 섬 안에 있는 집으로 잽싸게 달려갔다. 그러고는 커다란 수대를 들고 다시 나왔다. 상원은 순배 뒤만 쪼르르 따라다녔다.
“바닷물이 빠지고 있다.”
“쫌만 기다리면 되겠네.”
“오늘도 물고기들이 많이 들어와 있으면 좋겠다만.”
순배는 가우섬에 살면서 학마을 상원이네 집 어장 일을 했다. 대나무 그물 안에 물고기들이 많이 들어와야 그만큼 정 사장에게 받을 것도 많아졌다.     
바닷물이 빠지자, 갯벌이 그대로 드러났다. 상원은 신이 나서 어장 쪽으로 뛰었다. 어장이 가까워지는 순간, 갑자기 눈이 크게 떠졌다.
“삼촌! 얼른 와 봐. 저게 뭐지?”
“뭐여? 왜 그래?”
“저건 뭐야?”
상원은 대나무 그물 안에 들어 있는 괴물 같은 걸 가리켰다. 괴물은 입만 떠억 벌리고 움직이질 않았다.   
순배가 어장 쪽으로 조심조심 다가갔다. 숨소리를 죽였다. 어장 안에 물고기들이 없었다. 도미나 우럭, 숭어 같은 것들이 한 마리도 없었다. 대신 등껍질이 붉은 커다란 거북이 들어앉아 있었다. 큰 거북 옆엔 어린 거북들이 어기적어기적 기어다니고 있었다.
상원은 어린 거북들을 세어 보았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모두해서 다섯 마리였다.   
“우와! 순배 삼촌. 이게 뭔 일이야?”   
“오메. 나도 잘 모르겠다.”
상원은 어장 안에 들어 있는 거북들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들뜬 소리로 물었다.
“야! 너희들은 뭐야? 왜 여기 있어? 어떻게 들어온 거야?”
 

그림 강화경
그림 강화경

 

가우섬과 학마을 사이
물살이 센 바닷가에
참나무 말뚝을 밖아 
어장을 만들었다

상원이는 삼촌을 따라
돛배를 타고 어장으로 갔다

바닷물이 빠지고 어장이
드러나자 그 안에
거북이들이…

 

2. 내 이름은 해수
꼬마 거북들이 태평양 바닷속을 즐겁게 헤엄치고 있었다. 붉은바다거북은 헤엄치다 숨이 가빠지면 잠시 물 위로 올라왔다. 짧은 순간 숨을 쉬고는 다시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도도독 도도독.
거북들이 바다풀을 뜯어먹었다. 
“와, 맛있다.”
꼬마 거북들은 바닷말이 촘촘히 자라난 곳으로 옮겨갔다. 그 옆에 구멍이 숭숭 뚫린 바위가 있었다. 커다랗고 긴 네모 바위다. 집처럼 아늑해서 거북들이 자주 모여들었다.
거북들이 새의 부리처럼 생긴 입으로 바다풀을 뜯어 먹었다.       
또독. 도도독 또독.  
바다풀을 한참 뜯던 꼬마 거북들은 숨이 또 가빠졌다. 얼른 바다 위로 올라가 머리를 내밀었다. 숨을 쉰 후 물속으로 다시 쑤욱 들어왔다. 
긴 네모 바위 근처에 어른 거북들이 여럿 모여서 소곤거리고 있었다. 
“어두워지려면 아직 멀었나요?”
“하늘에 달이 떠야 해요.”
“별도 보여야죠.” 
알을 낳으러 갈 거북들은 큰일을 앞두고 가슴이 설레었다.   
그때 눈꺼풀이 긴 꼬마 거북이 소리쳤다.
“어, 저기 해수거북님이 오신다.”
“어디?”
해수는 이곳 바닷속에서 살고 있는 붉은바다거북들 가운데 가장 오래 살아온 어른이다. 단단한 등딱지엔 육각형의 무늬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해수가 느릿느릿 여유 있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꼬마 거북들이 그를 바라보며 인사했다. 
“얘들아, 잘 지냈니?” 
해수는 목을 쭉 뺐다. 그동안 바닷속을 돌아다니며 더러운 곳, 위험한 곳을 찾느라 바빴다. 굵어진 목이 한층 묵직하게 느껴졌다.
“어디 갔다 오셨어요?”  
“그래, 아주 멀리 멀리 다녀왔지.” 
해수는 먼바다까지 나갔었다. 앞발을 노 젓듯 움직이며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바다 아래에는 온갖 쓰레기들이 날마다 쌓여 갔다.
‘저걸 어떻게 하지? 우리 몸에 안 좋을 텐데…….’
해수는 고민했다. 그 쓰레기들을 없애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랐다. 
바닷속에는 아름다운 것들도 많았다. 곳곳에 있는 바다풀들이 색동저고리처럼 반짝거렸다. 바닷말은 너울너울 춤을 추었고, 물고기들은 매끈둥하게 헤엄쳐 다녔다. 해수는 바다를 돌아다니며 오래오래 그런 바다를 지키고 싶었다.    
바위 부근에 모여 있는 엄마 거북들 쪽으로 해수가 눈을 돌렸다. 엄마 거북들이 먼저 인사를 했다.
“어머, 해수거북님. 언제 오셨어요?”
“해수님이 돌아오시니 든든하네요. 잘 오셨어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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