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진강을 따뜻하게 내려다 본다

 

탐진강을 따라 넓게 자리한 군동면의 평야지대를 따라 가면 대곡(大谷)마을이 있다. 대곡마을은 김해김씨가 처음 입촌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밀양박씨, 광산김씨, 문화유씨등 17개성씨가 고르게 분포돼 있다.

조선시대에 마을이 처음 생겨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인근 덕천마을에 청동기시대의 고인돌군이 발견되는 것으로 미뤄 대곡마을에도 선사시대부터 수렵활동과 채집생활이 존재했을 가능성도 있다.
 

마을은 아기자기한 골목으로 이어진다.
마을은 아기자기한 골목으로 이어진다.
마을의 서쪽에 저수지가 있다.
마을의 서쪽에 저수지가 있다.

 

마을의 지형이 고지대로 큰 골짜기가 있어 한실이라고도 불렸다. 마을의 전체적인 모양이 학모양을 나타내고 있다. 학모양의 마을형국속에 주민들에게 구전되는 옛명칭들이 마을의 곳곳에 남아있어 대곡마을의 정취를 더하게 만든다.

마을뒷편에는 고양이의 모양을 닮은 괘바우, 마을의 뒷산이 된 괘바우산, 망운사라는 사찰이있던 망대, 마을의 서쪽 끝에 위치해 이름지어진 가골, 고사리를 채취하기 위해 많은 주민들이 찾던곳으로 현재는 우거진 수풀로 길이 사려졌다.
 

마을의 남쪽에 괘바위산이 있다.
마을의 남쪽에 괘바위산이 있다.
북쪽으로 탐진강변 시원한 들판이 펼쳐진다.
북쪽으로 탐진강변 시원한 들판이 펼쳐진다.

 

밋밋한 골짜기라 해서 명명된 민자골, 넓은 골짜기로 붙여진 큰골, 장애인과 행려자들을 수용했던 나그네 기도원이 명칭을 바꿔 최근까지 사용됐던 강진영애원, 마을의 농업용수의 젖줄인 묘암제, 칠량면 삼흥리로 넘어가는 민재, 마을앞에 위치해 붙여진 안산, 남쪽에 위치한 초매골과 큰골등이 마을을 대변하고 있다.

대곡마을에서는 마을단위로 조성된 풍물패가 있었다. 예전에는 양규생씨와 김칠만씨가 풍물패를 이끌고 매년 정월대보름날에 마을의 가가호호를 돌아 주민들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마당밟기를 했다.
 

옛 지붕들이 보인다.
옛 지붕들이 보인다.

 

여기서 마련된 성금은 유두날 마을주민들이 함께 마을잔치를 여는데 사용된다. 지금은 매년 양력 8월15일 출향인과 마을주민이 어우러지는 잔치가 열리고 있지만 풍물패의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다.

대곡마을에는 예부터 지켜오던 풍습이 있었다. 괘바우산에 목각으로 만들어진 당산할머니를 모시고 매년 정월보름날 제사를 지냈다.

마을에서 제관을 정해 매년 제사를 올려 마을의 안녕을 기원했으나 40여년전부터 의식이 사라졌다. 마을주민들은 마을의 쇠퇴하는 이유를 당산할머니에 대한 제사를 지내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주희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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