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문학파기념관, 문화재청 지역문화재 활용사업 성료
매주 월요일 38회 진행…군민 40명 열띤 호응 마무리

 

강진 영랑시인학교가 산고 끝에 시인 배출의 산실로 자리를 잡았다. 8일 강진군 시문학파기념관에 따르면 시문학파기념관은 지난 3월 영랑시인학교 개강식을 가진 뒤 9개월만인 오는 20일 최종 수업 시간을 앞두고 있다. 이어 28일에는 전북 부안 석정문학관으로 문학기행을 떠나 사실상 올해 영랑시인학교를 마무리한다.

영랑시인학교는 국가민속문화재 제252호인 영랑생가를 활용한 인문학 프로그램이며 문화재청 지역문화재 활용사업의 하나로 추진했다. 

수강생 40명은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뉘어 지난 3월 6일부터 9개월 동안 매주 월요일 모두 38회에 걸쳐 교육을 진행했다. 이들은 강사로 나선 시조시인과 시인으로부터 이론과 실기중심으로 교육을 받았다. 

 

실제로 영랑시인학교가 처음 시작된 지난 2020년부터 2022년까지 교육을 이수한 70% 정도가 시인으로 등단했을 만큼 참여자들의 시에 대한 열의와 관심은 뜨겁다. 하반기 28일 전북 부안 석정문학관 문학기행을 떠나 마무리 짓는다  .

이석우 시문학파기념관장은 “영랑의 고향이자 시인의 고장 강진에서, 인문학적 교양을 토대로 삶과 예술을 하나로 묶은 뜻깊은 시간들이었다”며 “앞으로도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영랑생가의 문화재 가치를 확산시키고, 군민들에게는 예술적 감수성을 높여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올해 영랑시인학교를 통해 성장세를 보인 군민들의 몇몇 작품들을 통해 ‘시인’들의 속살을 들여다봤다. 

작품은 무작위로 선택했으며 작품 평은 강사로 나선 시조시인과 시인의 평가가 아닌 일반론적인 관점에서 다뤘음을 밝힌다. 

우선 이재관의 ‘텃밭에서’다. 

텃밭에다
땀 두 됫박 쏟았다

김장배추 월동배추 쉰 개
양배추 양상추 쉰 개

아욱 무씨 반 봉지
시금치 씨 한 봉지는 감춰버렸다

뒤돌아 오는데
마음에서 나폴나폴
다 자란 첫눈
내렸다

시인의 시선이 따뜻하다. 텃밭에 땀을 쏟으며 배추와 양배추를 그렇게 많이 심지 않은 것을 보니 전문 농사꾼은 아닌 것으로 짐작이 간다. 농사꾼이면 설핏 했어도 될 일을 땀을 무던히도 흘렸다. 텃밭은 뒤돌아 올 정도로 거리가 있는 모양이다. 마음은 가볍고 하늘은 애써 눈발을 날려 보내 ‘농사꾼’의 발걸음을 흥겹게 했다. 

김선화의 ‘기다리는 사월’.

시문학 가는 월요일
요란한 아침 지나갑니다

모란 동백 흥얼거리며
고운 봄에 내려놓은 언덕

당신은 하얀 순백 새 신부
노랑 저고리 입은 모란을 기다립니다

사립문 돌계단 뒤안길
동백의 낙화 흐드러지고
당신 뺨도 덩달아 붉게 타오릅니다

모란 동백 기다리는
사월에는

영랑시인학교를 무척 사랑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꽃 중의 꽃 모란과 붉은 동백을 읊조리며 봄이 내려앉은 언덕을 올랐다. 여기서 당신은 하얀 빛깔의 모란을 지칭한 듯 하다. 노랑색의 모란도 뒤질세라 시인의 마음에 똬리를 틀고 있다.

단어로 표현되지 않은 영랑생가의 사립문과 돌계단, 뒤안길, 거기에 동백의 슬픔까지 흐드러진다고 했으니 모란과 동백을 기다리는 시인의 마음이 간절하다. 

박복희의 ‘모두가 사랑이라고’를 들여다본다.
                   
유리창을 때리는 빗줄기
따스한 커피잔 손에 쥐고
차향에 취해 눈 감는다//

창 사이로 추억 향기 하나 
가만히 들어온다
슬픈 곡조나 한번 불러 볼까

보상과 이익
따지지 말고
아랫목처럼 따습게 살라 한다

그리하여
모두가 사랑이고
막걸리 한 잔 부딪치며
허허하며
살게 된다고

관조의 관점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 지긋한 삶의 나이를 짐작하게 한다. 나이 어린 청년이 아닌 조금은 익은 ‘청년’의 모습이다. 원래는 아프리카나 중남미, 중국, 베트남의 차인 커피에 눈을 감고 마시며 선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지라 한다. 급기야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곡주인 막걸리로 하루를 마무리하라 이른다. 그래야 삶이 편안하다고. 

다음은 김종심의 ‘나의 노래’.

길 위의 이름에는 노래가 있다네
구부러진 길에도 아스팔트길에도
저마다의 노래가 있다네

낮의 길 위에도 밤의 길 위에도
저마다의 이름이 있다네
우리, 함께라면

구부러진 길에서든 아스팔트길에서든
밤이든 낮이든
꽃이 피는 길에서든 꽃이 지는 길에서든
메아리처럼 같은 노래를
둘이서 부르고 싶다네
너와 나, 우리들의 노래를 

삼라만상이 노래의 대상이다. 그 모든 만물에 이름이 있으며 그 이름이 곧 노래다. 길의 형태와 내용은 상관없다. 낮이든 밤이든 그것은 시인에게 차이가 없다. 사랑하는 꽃의 생성과 사라짐도 노래를 부르면 행복하다. 혼자가 아닌 둘이서, 사랑하는 그대와 함께라면 노래는 너무 즐겁고 행복하다고 시인은 노래한다.

김동신의 ‘물꼬’다.

수인산 아래 병영 들녘
늙은 아낙네 틈에 낀 새댁이
발목까지 빠져도 읽어내지 못한
경전 같은 수렁논

못줄 당기는 사람 둘
목청 우렁차다

가랑비
못밥 나르는 여인의 등을 적시고
개구리는
그 여인 발부리에서 치마끈을 잡고 운다
논물 대신 차오른 눈물

마른 논에 물을 대고 있는
내 생은
아직 물꼬를 트고 있는 중이다

농삿일이라곤 해 본 적 없는 새댁이 아주 곤란하다. 시집을 와 보니 주변은 일상이 벼농사다. 이제 갓 모내기라니. 작천 들녘에 대들 기세로 병영도 허리끈을 졸라매고 바지춤을 움켜쥐었다.

새댁이 할 일이라곤 그저 심부름. 제 한 몸도 건사하기 쉽지 않다. 한데 못줄 당기는 이는 목소리까지 우렁차 주눅이 들었다. 눈물이 하염없다. 물을 대고 있는 이가 새신랑인지 새댁인지 가늠할 길이 없다. 새신랑과 새댁이 지금 물꼬를 트고 있다. 내년에는 좀 수월해지려나.

김학나의 ‘안부’를 묻는다.
바람 편에 안부를 묻습니다
초록바람에 갈꽃이 나부낄 때면
하얀 꽃잎 허공을 비질할 때면
돌돌돌 시냇물 편에/안부를 묻습니다

그대 발길 머물지 않아도
서로 지워져 고독감에 허덕이지 않게
오랜 이별 뒤에도
잊힌 사이 되지 않게
은물결 밤하늘이 수놓은
초록 별빛에 흠뻑 젖어서
잔잔한 미소
마음에 담을 수 있게
가끔은, 

사랑인지 정인지 모르겠으나 세월 앞에는 장사가 없는 것일까. 바람에 기댄 채 하릴없이 묻는다. 계절에 묻고 꽃에 묻고 시나브로 흐르는 시냇물에마저 묻는다. 화자의 마음이 안쓰럽다. 무릇 세상에 나면 만남이 시작일지라도 그 끝은 헤어짐이니 서운할 것은 없다지만 인연은 어쩔 도리가 없다. 어느 밤 지쳐 바라본 별빛이 가득한 하늘, 거기에 잠겨본다. 나도 모르게 다가온 슬프지만 아득한, 엷은 미소. 이것은 온전히 내 것이겠지, 가끔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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