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비밀의 숲, 칠량 오봉산에 비자나무 숲이 있다

칠량자연공원묘원 오봉산 자락
임도 주변 비자나무들 숲이뤄
수백만평 될 것으로 추정

최소 400~500년이상 고목 많아
산림관광 자원 활용가치 충분
정확한 실태조사부터 이뤄져야

 

칠량면의 풍부한 산림을 알 수 있는 가마터가 발굴됐던 삼흥저수지의 모습이다.
칠량면의 풍부한 산림을 알 수 있는 가마터가 발굴됐던 삼흥저수지의 모습이다.

 

강진에서도 칠량면은 나무와 숲이 잘 조성되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칠량면 삼흥저수지에는 고려시대 가마터가 발견된 곳이다.

가마터가 발견됐다는 것은 고려시대 청자를 구웠던 곳이었고 가마를 운영하기 위한 장작을 구하기 쉬웠던 곳이 삼흥저수지 인근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지난 1997년부터 칠량면소재지부터 구로마을 일대까지 가뭄으로 농업용수 부족을 호소하자 국가에서는 삼흥저수지를 확장하는 숭상공사를 진행했다. 

이 사업을 진행하면서 저수지에서 가마터가 발견됐는데 고려시대 토기가마 9기, 청자가마 5기, 기타 1기 등 총 15기의 가마터가 발견됐다.
 

칠량자연공원묘원 뒷편으로 연결된 임도변에 비자나무들이 서 있다.
칠량자연공원묘원 뒷편으로 연결된 임도변에 비자나무들이 서 있다.

 

이 곳은 고려시대 초기 청자를 굽던 곳으로 추정되는데 삼흥리 일대 청자를 굽던 가마터가 있었던 이유는 이 일대에 땔감인 나무와 숲이 많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그만큼 오래 전부터 삼흥리 일대는 나무와 숲이 우거져있었던 산림자원이 풍부한 곳이라고 볼 수 있다. 

삼흥리 일대 조선후기에도 엄청난 산림자원을 자랑했는데 60년대 중반까지는 칠량 삼흥리와 명주리에서 많은 땔감이 나왔다. 

칠량 봉황마을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때에는 4㎞가 넘는 삼흥리 등에서 지게로 나무를 등에 져 날랐다고 한다.

부용산 임도변에 비자나무가 자라고 있다.
부용산 임도변에 비자나무가 자라고 있다.

 

일본인들은 일찍이 이 산의 가치를 알고 조합을 만들었다. 일제강점기때에 엄청난 양의 나무가 봉황포구와 대구 미산포구를 통해 일본으로 빠져나갔다. 해방 후에도 엄청난 양의 나무가 목포, 부산 등지로 유출될 정도였다.

삼흥리 일대 편백나무부터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많지만 칠량자연공원묘원에서 임도를 타고 오르면 나타나는 부용산 자락이 나타나는데 이 곳에는 비자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정확한 숫자가 파악되지 않을 만큼 울창한 숲속에 많은 비자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칠량자연공원묘원 뒤편은 국가에서 관리하는 국유림지역으로 수백만평의 숲이 존재한다. 칠량자연공원묘원에서 약 300~400m 가량을 임도를 따라 오르다보면 도로변에 여러 가지 나무들 속에 섞여있어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아주 독특한 비자나무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일반적으로 비자나무는 100년이 지나야 지름이 20㎝정도가 자란다고 알려져 있다. 이 곳 부용산 자락의 비자나무들은 얼핏 봐도 지름이 1m이상 될 정도로 나무 크기가 큰 편이다. 높이도 최소 10m이상 되는 나무들이 여러그루 보일 정도다.

칠량공원묘원 뒷편 비자림 아래로 시원한 계곡물이 흐르고 있다.
칠량공원묘원 뒷편 비자림 아래로 시원한 계곡물이 흐르고 있다.

이런 점들로 미뤄봤을 때 최소 400~500년이상은 된 비자나무들로 추정된다. 숲속에는 비자나무들이 길쭉하게 하늘을 향해 뻗어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보통 비자나무는 척박하고 건조한 곳을 매우 싫어하며, 내음성이 강하지만 생장은 아주 느린 나무로 알려져 있다.

암나무와 수나무가 다르며, 4월에 꽃이 펴서 열매는 이듬해 가을에 익는데, 아몬드 같이 생겼다. 씨가 떫으면서도 고소해 술안주 등으로 먹기도 하나 독성이 있어 주의해야 하며 옛날에는 회충, 촌충 등의 구충제로 쓰였다.
 
비자나무 목재는 향기가 나고 탄력이 있어서 귀하게 쓰이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둑판이다.

값이 비싼 최고의 명반이며, 습기에도 잘 견디어 관재 또는 배의 중요한 부분을 만드는 재료로 쓰는 목재다. ‘조선왕조실록’이나 ‘동국여지승람’에 원나라 궁궐 축조에 우리나라에서 목재를 세공으로 바쳤다는 기록도 있다.

비자나무 열매가 약재로 활용됐기 때문에 인기가 있는 나무였지만 특히 바둑판을 만들기에 아주 안성맞춤인 나무로 알려져 있어 오래된 비자나무들은 대부분 사람들에게 베어져버리기 일수였다. 그래서 오래된 비자나무는 보존되기 상당히 어려운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 곳 칠량면 삼흥리 부용산 자락은 수백년은 되어 보이는 비자나무들이 울창하게 숲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독특하면서도 보존가치가 높은 산림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 곳 일대에 비자나무들이 사람들에게 베어지지 않았던 이유는 오래전 교통도 불편했던 데다가 나무를 베어낸 후 운반을 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에 보존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오래전 이 곳에 비자나무들을 식재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마 이 곳 비자나무 숲도 장성 백양사의 주변 비자나무숲과 마찬가지로 약재로 활용하기 위해 심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칠량자연공원묘원 자리에 오래전 만흥사라는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 이 사찰에서 사찰 뒤편 산에 비자나무를 식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비자는 상당히 귀한 약재로 고려시대때부터 진상품이었다. 그만큼 비자나무는 귀한 존재였던 나무이다.

500년 이상된 비자나무는 상당히 귀한 존재인 만큼 이 곳 부용산 자락 비자나무숲도 정확한 현황파악부터 시작하고 이를 바탕으로 비자나무숲을 잘 가꾸고 보존해 강진의 관광자원으로서 만든다면 전국 어느 곳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만큼 훌륭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오기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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