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를 그림속에 녹여낸 나만의 작품 활동 시작

나는 와보랑께박물관을 운영하고 있지만 화가로서 활동도 하고 있다. 나는 주로 일반적인 풍경화보다는 와보랑께박물관의 상징과도 같은 사투리를 그림에 접목시켜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이런 그림은 박물관 홍보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이번호에는 사투리 그림을 그리게 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나는 어렸을 때에는 그림에 대한 꿈을 갖고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학교 주변을 다니며 주변 풍경을 스케치북에 담아 그림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시절 교실 뒤편에 내가 그린 그림이 걸릴때면 하루종일 기분이 좋았던 기억도 난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내가 중학교에 진학했을 때에도 계속됐다. 어려운 가정형편이었지만 어머니의 도움으로 광주 사대부중을 진학했다. 이 곳을 졸업하면 교사가 될 수 있었기에 당시에는 입학경쟁율이 상당히 높았다.

이 학교에서도 그림 그리는 일은 계속 됐는데 당시 학교에는 동산이 하나 있었다. 이 곳에 오르면 멀리 무등산이 보였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이 곳 동산에 올라 그림을 그리곤 했는데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던 곳이다.

나는 이 곳에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동경을 하게 됐고 그림에 더욱 빠지게 됐다. 그림에 더욱 빠지게 되면서 미술은 성적이 우수했지만 그 외에 과목은 성적이 좋지 못했다.

그림에 빠지게 되면서 학업은 뒷전이 되어갔고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기도 했다. 어머니와 가족들의 만류로 학교는 계속 다니게 됐는데 그림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져갔다.

중학교 졸업후 예술관련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가정형편상 꿈을 이루지 못하고 취직을 하게 됐다. 나는 친척의 소개로 광주의 한 간판집에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림그리는 것과 간판을 그리는 일은 천지차이였다. 결국 적응하지 못하고 1년여만에 그만두고 방황을 하다가 군대를 가게 됐다.

군대에서도 스케치북을 들고 그림을 그리곤 했는데 그 이후로도 나와 그림은 계속 인연이 이어졌다. 그러던중 내가 사투리를 그림과 접목하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5년전 광주 드로잉회에 가입하면서였다.

광주 드로잉회는 광주와 전남지역에서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교수에서부터 화가, 일반 사람들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 그림에 대한 열정을 나누고 자신의 작품활동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이 곳에 김종일 교수라는 사람의 소개로 가입하게 됐다. 이 곳에서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교류하며 여러 가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그곳의 회원들은 다른 사람의 작품을 보고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림에 대한 열정넘치는 모습을 보게 되면서 나 자신도 나만의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는 고민을 하게 됐다. 이런 고민을 김종일 교수에게 털어놓았는데 김 교수는 나에게 사투리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으니 사투리로 그림을 그려봐라는 아이디어를 주었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아 이거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때부터 한글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왕 한글로 그림을 그린다면 박물관의 상징과 같은 사투리를 이용해 그림을 그려보자고 결심하게 됐고 작품을 시작했다.

내가 처음 그렸던 사투리는 ‘오메 왔는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투리를 정하고 이를 그림속에 녹이기 위해 다양한 구도를 연구했다. 그림이 완성되면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글자를 설명하기도 했다.     <정리=오기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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