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가 있다

 

병영면 백양(白羊)마을 입구에는 대리석으로 빚은 하얀 양 한 마리가 오는 이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장흥군 성불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백양마을은 병영면소재지에서 장흥방면으로 3㎞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 곳으로 병영면에서 가장 먼저 설촌 된 마을로 전해지고 있다.
 

남쪽도 산으로 둘러 싸여있다. 
남쪽도 산으로 둘러 싸여있다. 

 

마을주민에 따르면 마을이 형성된 시기만도 지금으로부터 700여년 전. 백운선사가 마을에 사찰을 건립하면서 자연스레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백양마을은 논보다는 밭이 많았다. 이 때문에 밭농사가 발달되면서 깨, 콩 등 잡곡농사를 비롯해 고추, 상추, 무 등 원예작물을 많이 짓기로 이름이 나 있었다.

오래된 백양교회다.
오래된 백양교회다.
담장에 담쟁이가 무성하다.
담장에 담쟁이가 무성하다.

 

특히 고추재배는 지난 1980년대까지 병영면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자랑하면서 ‘백양고추’하면 모르는 이들이 없을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고 한다.

백양마을의 토양은 대부분이 사질토를 이루고 있어 물 빠짐이 좋고 이는 나무의 성장과정을 돕는 역할을 하면서 뿌리를 튼튼하게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여기에 마을의 지형적 특성상 일조시간이 길다. 이 때문에 다른 마을에 비해 감나무가 많다. 또 과수농가들은 감나무 주변에 제초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원칙으로 친환경재배에 나서고 있어 품질에서도 우수성이 뛰어나다. 

마을 회관 앞이다.
마을 회관 앞이다.

 

백양마을은 1900년대 초에는 밤나무가 많았고 중반에 들어서는 목화나무가 주종을 이루었다. 1930년대에 들어서는 뽕나무 재배가 활발했고 오늘날에 와서는 감나무가 마을 곳곳을 수놓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을뒤편에 강진에서 가장 오래된 백양교회가 있다. 교회가 들어서기 전에는 금화학당이란 서당이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일제강점기에도 마을출신 대학생들이 많았고 민족의식을 고취시켜 나가려는 인물도 그만큼 많았다.

금화학당은 1933년 일제의 명령으로 개량서당으로 명칭이 개칭된데 이어 1944년 자진 폐교돼 역사의 현장으로 사라졌지만 이러한 역사적 사실만으로 백양마을 주민들의 교육적 열망과 민족의식을 느낄 수 있다./주희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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