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하며 평생 수집해온 우표 1천여장 박물관에 기증

TV와 라디오 등 여러 가지 방송매체를 통해 와보랑께박물관이 전파를 타게 되면서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연락을 해오기 시작했다. 그둘 중에서는 물건을 기증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기억에 남는 몇 명에 대해 소개해보고자 한다.

이 사람은 전남도교육청에서 장학사를 지내기도 했던 교육 공무원이었다. 내가 학교에서 근무할 때 알게 된 직장동료였는데 어느 날 이분이 나에게 연락을 해왔다. 방송을 통해 박물관 소식을 접하게 됐다면서 자신도 물건을 기증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분은 공직에서 물러난 이후 어느 날 박물관을 찾아왔다. 그가 가져온 물건은 바로 우표였다. 평생 자신이 공직생활을 하면서 수집해온 우표를 박물관에 기증한 것이었다. 우표의 양은 상당히 많았는데 우표 수집첩으로 10권정도였고 우표 개수로 계산하면 얼핏봐도 1천장은 훨씬 넘는 양이었다.

우표를 기증하면서 이분은 나에게 수집하면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이분은 학교에서 평교사 시절 우표를 수집하게 됐는데 이때만 하더라도 우표 수집이 유행했던 시기였다.

우표를 수집하기 위해 학교로 우편물이 오면 우체부 노릇을 했다. 바로 학교 전체 우편물을 받아서 자신이 직접 우편물을 교사와 직원들에게 전달해준 것이었다. 

이렇게 우편물을 전달하고 그 자리에서 우표를 떼어달라고 요청해 수집해온 것이다. 이렇게 하나 하나 정성을 들여 수집해온 우표였다는 사실을 설명하며 잘 전시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분은 그 이후로도 박스로 3개정도 양을 소포로 보내왔다. 박스에는 학교에서 근무할 당시 모아두었던 각 학교의 졸업장과 앨범 등이 담겨있었다.

이 분은 학교에서 함께 근무할 당시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때는 내가 주위 물건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기도 했는데 이 사실이 기억났다면서 나에게 장갑과 마스크 등 다양한 물건들을 보내오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림을 그리지는 못하고 있는데 시간을 내서 그림을 그려야 할 것 같다.  

또 한번은 보성의 한 인쇄소에서 연락이 오기도 했다. 평소 전혀 안면이 없던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이 사람도 방송을 통해 박물관의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물건을 기증하고 싶으니 와줄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몇일 후 알려준 보성의 한 인쇄소를 찾았다. 그곳에서 기증자가 나에게 보여준 물건은 인쇄용 활자판이었다. 예전에 인쇄소에서 사용했던 것으로 명함을 만들때 한글 글자를 조합해서 판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대는 컴퓨터가 없었던 시절이었기에 글자를 조합해서 하나의 판으로 만들어서 인쇄를 했던 것이다. 지금은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사용하지 않는 물건인데 이 물건을 박물관에 기증하고 싶다고 한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박물관에 인쇄용 활자판도 전시될 수 있었다.

영암의 한 기증자는 박물관에 놀러왔다가 그 자리에서 물품을 기증하기도 했다. 이 사람은 영암에서 숙박업소를 운영하고 있던 사람이었는데 중국을 여행했다가 그곳에서 북한 화폐를 구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물관에 전시중인 오래된 우리나라 지폐를 보고 그 자리에서 중국에서 구해온 북한 화폐를 지갑에서 꺼내서 나에게 기증해주었다. 현재 박물관에 오래된 지폐와 함께 전시중이다.

또 한번은 광주의 한 학교에서 폐기처분대상 물건을 기증해오기도 했다. 그 물건은 전통악기류였는데 북과 가야금, 거문고 등이다. 이 물건들도 현재 전시중이다. <정리=오기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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