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마을가게 ‘보전 점방’
50년 세월 버티며 지전안
13개 마을서 유일하게 남아

90년대까지 사람들로 북적…명절에도 동네 사랑방 노릇
75세 홍종태 사장 “건강 허락할 때까지 운영해 볼 것” 

 

홍종태(75)사장이 보전 점방 안에서 사진촬영에 응했다. 5평 남짓한 공간에는 지난 50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철제선반 위로 과자와 통조림, 음료 등이 눈에 띈다.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명절을 앞둔 이 맘때면 홍 사장의 가게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물건도 많았다.  
홍종태(75)사장이 보전 점방 안에서 사진촬영에 응했다. 5평 남짓한 공간에는 지난 50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철제선반 위로 과자와 통조림, 음료 등이 눈에 띈다.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명절을 앞둔 이 맘때면 홍 사장의 가게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물건도 많았다.  

 

강진읍 보전마을 우산각 맞은편에는 주황색 지붕을 두른 낡고 오래된 건물이 한 채 있다. 간판조차 없는 조그만 구멍가게다. 허물어진 담벼락 사이로 보이는 담배스티커만이 비로소 이곳이 ‘점방’임을 가리킬 정도다. 

5평 남짓한 내부는 작은 테이블 한 개와 냉장고, 전자레인지 등이 전부다. 뽀얀 먼지를 뒤집어 쓴 과자 봉지와 오랫동안 자리를 지켰음직한 녹슨 철제선반이 세월의 흔적을 대신한 듯 보였다. 

사람의 발길도 드물다. 홍종태(75)사장은 “한번 앉아 있어 보면 손님이 아예 없다는 걸 느낄 것”이라며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추석 명절을 앞둔 이 맘때면 홍 사장의 가게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선반은 과자와 사탕은 물론 온갖 생필품이 줄을 이뤘다. 냉장고는 소주와 맥주, 막걸리로 빈틈이 없었고 계산대 서랍은 담배로 들어찼다. 

몇몇 과자와 통조림, 음료 등이 전부다. 
몇몇 과자와 통조림, 음료 등이 전부다. 

 

홍 사장은 “추석이 돌아오면 객지로 돈 벌러 갔던 사람들이 돌아와 이곳을 꼭 들렀죠. 그러곤 양손 가득 술이며 담배, 사탕 과자를 사 들고 가요. 그때는 뭐든 많았지요. 사람이며 물건이며...참 그립던 시절이지”

홍 사장은 스물다섯 살 때 아버지로부터 지금의 가게를 물려받았다. 가게를 이끈 지 올해로 딱 50년이 된 셈이다. 예나 지금이나 이렇다 할 상호나 번듯한 간판조차 없는 탓에 담배나 주류회사들은 홍 사장의 가게를 ‘춘전마트’로 일컫는다. 지금은 영세사업자로 분류돼 내야 할 세금도 마땅히 없다.  

홍 사장이 가게를 맡았던 1970년대만 하더라도 어느 동네든 어지간하면 구멍가게 하나쯤은 있었다. 구멍가게로부터 한 동네가 시작되는 경우도 많았고 가게 규모가 그 동네의 생활수준을 말해 주는 척도가 되기도 했다.

보전마을이 속한 춘전리만 하더라도 4개 마을에 구멍가게가 6~7곳은 됐다. 소위 지전안길로 불리는 13개 마을까지 범위를 넓히면 그 수는 몇 배로 늘어난다. 

보전 점방의 외부 모습. 
보전 점방의 외부 모습. 

 

홍 사장에 따르면 구멍가게는 동네의 사랑방 구실을 톡톡히 했다. 주민들은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 생기면 가슴에 담아 가게 앞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평상이라도 있으면 좋았고 없어도 상관없었다.

사과 궤짝 하나 엎어 놓고 그 위에 소주나 막걸리 두어 병 올려놓으면 최고의 상이었다. 그 앞에 둘러앉아 기쁨은 키우고 슬픔은 서로 나누어 줄였다. 명절에는 특히 더 그랬다. 

당시에는 마을마다 구멍가게가 2~3곳은 기본으로 있었다. 보전마을 바로 아래 부춘마을에도 구멍가게가 3곳이나 됐다. 지금은 모두 사라져서 지전안길을 통틀어 남아 있는 구멍가게는 홍 사장네가 유일하다. 

이렇다보니 홍 사장의 가게에선 ‘장사’의 의미를 찾기란 힘들다. 그만큼 욕심도 없다. 물건값도 어지간해서는 올리지 않는다. 테이블에 앉아 맥주 두 병을 마셔도 5천 원이면 충분하다.

기본안주로 내주는 볶은콩과 뻥튀기는 공짜다. 부족하면 과자나 통조림을 추가로 구입해 안주로 보태면 되는 식이다. 소주도 한 병에 2천500원이고 막걸리 또한 마찬가지다. 

홍 사장은 “이윤을 따졌으면 진즉 문을 닫았어야 할 판이다. 가게를 그만두라는 자식들의 아우성도 귀가 아플 지경이다”면서 “그래도 저렴한 가격에 그나마 가게를 찾아주는 사람이 있고 옛 기억이나 추억을 찾으러 온 손님들도 더러 있다. 이렇다 보니 돈보다는 그저 세월이나 추억, 옛정 같은 그러한 것들이 전부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홍 사장은 6년 전 부인을 잃었다. 췌장암이 발견돼 서둘러 수술에 나섰지만 끝내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홍 사장의 부인은 음식 솜씨가 무척이나 좋았다고 한다. 특히 닭요리가 일품이었다. 지전안길 뿐만 아니라 읍내에서 온 단골손님들도 많았다. 그래서 한때는 홍 사장의 구멍가게가 닭집으로 불리던 때도 있었다. 

홍종태 사장은 “명절을 앞두고 마을을 찾는 사람들은 가게 문이 여전히 열려 있는 모습을 보며 반가운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면서 “제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가게를 계속 운영해 볼 생각이다”고 미소지었다./김응곤 기자

저작권자 © 강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