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리에 배가 들어와 시장이 섰다

1935년까지 강진읍장이 있던 자리
각 섬에서 뱃길따라 물산 모이던 곳

 

강진읍 도원마을 강진천 주변 옛 배드리터에 공원이 조성돼 있다. 큰 기념비가 세워져 이곳이 옛 배드리시장이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강진읍 도원마을 강진천 주변 옛 배드리터에 공원이 조성돼 있다. 큰 기념비가 세워져 이곳이 옛 배드리시장이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강진읍 도원마을 강진천변에 배드리 공원라는 비석이 보인다. 배드리는 원래 강진장이 있었던 곳이다. 배가 닿는 곳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지명이다.

주교시(舟橋市)라고도 불리었다. 신전면 영수리와 해남면 북일면의 경계 지역 작은 하천 다리에도 배드리란 지명이 있다. 그곳 역시 오래전 배가 들어왔던 곳이다.

배드리 강진장은 강진사람들은 물론 완도지역의 각 섬과 인근 장흥, 해남사람들도 이용하던 장이었다. 배를 타고 오면 강진만을 따라 곧장 시장으로 올 수 있는 구조였다. 도원마을에 큰 장이 섰던 것이다. 

배드리시장은 남포마을이 가까웠다. 남포마을은 서남해안지역 각 섬에서 해산물이 모여든 곳이었다. 매일같이 파시가 섰다. 인근 배드리에 오일장이 서기에 제격이었다. 남포마을에서 충분한 해산물이 공급됐기 때문이다.

남포마을은 시장이 설만한 공간이 없었다. 서남해안 지역에서 수산물을 실은 배들이 들어와 물건을 퍼놓고 가면 상인들이 그것을 가지고 이리저리 팔러 다니는 구조였다. 순수하게 수산물을 유통하는 곳이 바로 남포마을이었다.

이에 비해 도원마을 배드리에는 모래사장이라는 넓은 공간이 있었기 때문에 수산물은 물론 농산물, 공산품등이 함께 거래되는 종합마트가 서는 큰 오일장이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섬사람들이 가장 귀한게 식량과 생활필수품이었다.

그것들을 육지에서 조달해야 했다. 완도읍은 그런 생필품을 공급할 시스템이 부족했다. 그래서 고금도와 금일도, 청산도등 강진인근 섬사람들이 배를 타고 모두 이 도원마을 배드리시장까지 와서 물건을 구입해 갔다.
 

비석 뒷면에 배드리공원의 옛 역사가 새겨져 있다.
비석 뒷면에 배드리공원의 옛 역사가 새겨져 있다.

 

배드리시장도 흥하고, 배드리시장을 뒷받침하고 있는 도원마을도 흥했다. 그때가 도원마을이 가장 잘 살고 시끌벅적할 때였다. 

배드리시장 모래사장은 시장 뿐 아니라 강진의 주요행사가 자주 열리는 종합운동장 역할을 했다.

동아일보 1907년 5월 11일자에는 강진 최초의 사립학교인 금릉학교가 봄철 운동회를 배다리에서 열었다는 기사가 나오는데 ‘강변에서 열린 금릉학교 봄 운동회에 95명의 학생들이 행사를 했는데 5천여명의 관람자들이 모여들어 성황을 이뤘다’고 했다. 배다리 주변 모래사장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는 기사다.

난장도 자주 열었다. 난장이란 일종의 축제였다. 요즘에는 자치단체나 기관에서 축제를 주최하고 주관하지만, 옛날에는 돈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부담을 해서 축제를 열었다.

난장이 터지면 보통 일주일 정도 먹고 놀자판이 열렸는데, 씨름대회는 물론 윷놀이, 그네뛰기등 다양한 놀이가 펼쳐졌다. 물론 난장 기간 동안 음식은 모두 공짜로 제공됐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난장이 있다는 소문이 나면 주변지역에서 이름난 왈짜들이 수없이 몰려 들었다고 한다.

그때의 장면은 1907년 5월 11일, 강진에서 처음 열렸던 금릉학교 봄철 운동회날을 연상하면 좋을 것 같다. 당시 동아일보가 금릉학교의 운동회 풍경을 보도했는데 ‘강변에서 열린 금릉학교 봄 운동회에 95명의 학생들이 행사를 했는데 5천여명의 관람자들이 모여들어 성황을 이뤘다’고 했다.

별다른 구경거리가 없던 시절 난장이나 운동회 같은 행사에 구름처럼 사람들이 몰려 들었던 것이다. 배다리 강진장은 지금으로 말하면 종합시장이나 종합운동장이었고, 사람들의 큰 놀이터였다. 

강진장은 1935년 9월 27일 현재의 강진읍 동성리 187-1 일대로 옮겨졌다. 해방이 되기 전의 일이다. 이때는 강진읍이 강진면에서 읍으로 승격한 때라 강진읍을 중심으로 상가가 발전할 때였다.

자연스럽게 오일장의 읍내중심지 이동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읍내 인구가 증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배드리시장이 읍내쪽으로 옮겨가면서 도원마을도 한때 쇠퇴의 길을 걸었다.

시장이 갑자기 없어지면서 여기에 필요한 인력등이 함께 빠져 나갔던 것이다. 그러다 80년대 들어서 도원마을 주변에 공장이 들어서고, 주변에 농업수단이 발전하면서 마을은 옛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요즘 배드리공원 남쪽으로 큰 철도가 지난다. 강진과 보성, 강진과 목포를 잇는 철도다. 세월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주희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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