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년만에 다시 만난 친구가 기증한 소중한 수석들

와보랑께박물관이 TV를 통해 여러차례 방송이 되면서 지역 주민들은 물론이고 나와 인연이 전혀없는 사람들도 기증하고 싶다는 연락이 오게 됐다.

한번은 나와 평소에 알고 지냈던 관내 한 면단위 사설우체국을 운영하고 있던 우체국장이 연락을 해왔다. 아마 2000년대 초반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체국에서 폐기처분된 오래된 물건들을 창고에서 정리하고 있는데 버리자니 아까워서 나에게 연락을 해온 것이었다.

물건을 기부해주겠다는 고마운 마음을 생각해 곧바로 우체국 창고를 찾아갔다. 창고에는 다양한 기계들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수표를 찍는 기계였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방식이지만 예전에는 수표를 장비로 찍어서 사용했다.

이 기계로 수표를 찍고 금액을 적고 도장을 찍어 은행으로 가면 돈으로 바꿔주는 방식이었다. 낡은 컴퓨터 몇 개도 함께 창고에 있었다. 나는 이 물건들을 가져와 박물관 한쪽에 전시해놓았다.

또 한번은 광주드로윙회에서도 의미있는 물건을 기증해왔다. 나는 젊은 시절부터 그림에 관심이 있었고 드로윙회라는 단체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었다. 이 모임에서 나와 함께 활동하던 사람이었는데 이 사람은 초상화를 전문적으로 그렸다.

보성의 서재필기념관의 영정을 비롯해 전남권에 의미있는 인물들의 초상화를 많이 그렸고 관공서에서 이를 사용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 분이 영랑의 초상화도 그린 적이 있었는데 연습삼아 그렸던 영랑 초상화와 서재필 초상화 등의 작품을 나에게 기증해주었다. 

나에게 아직도 기억에 남는 기증자가 또 한명이 있다. 바로 나와 초등학교와 중학교 친구였던 고 조병선 전 제일은행 지점장이다. 이 친구는 나와 같은 초등학교는 아니었지만 작천 이남리가 고향이었기에 병영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그 친구는 병영초등학교 나는 병영동초등학교였다. 하지만 그 친구는 나와 함께 조대부설중학교에 입학했다. 함께 방을 쓰며 숙식을 함께 하기도 했던 사이였기에 누구보다 친하게 지냈던 친구였다.

하지만 이 친구는 중학교 졸업이후 은행원으로서 승승장구했고 나는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힘겹게 살았다. 가는 길이 달랐기에 중학교 졸업후 연락이 끊어졌다.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서로 잊고 지냈다.

어느 날 갑자기 조병선이라는 친구가 박물관을 찾아왔다. 아마 2004년쯤으로 기억한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갑자기 TV를 보는데 화면에 내가 나오는 모습을 보았다고 말했다. 병영에서 와보랑께박물관을 운영하는 모습이 TV를 통해 방송됐고 이 모습을 본 것이었다.

친구는 반가운 마음에 고향에 내려올 기회가 생겼고 곧바로 나를 찾아왔던 것이었다. 이때 박물관과 가까운 곳에 부모님의 묘가 있었고 그곳을 찾았다가 박물관을 방문한 것이었다.

이날 50여년만에 다시 친구를 만났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근황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날 우연히 친구는 자신이 취미로 전국을 다니며 수석을 수집하고 있는데 수천여점이 집에 보관중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나도 여행가서 취미로 주워온 수석 몇가지를 보유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며 보여주었다.

얼마후 이 친구는 나에게 다시 연락을 했다. 대뜸 차를 가지고 서울로 올라오라는 것이었다. 친구의 집을 찾아가보니 100여평 규모의 단독주택에 엄청난 규모의 수석들이 있었다. 친구는 나에게 이 수석들을 기증하고 싶다고 의사를 전달했다.     <정리=오기안 기자>
 

저작권자 © 강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