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벌레들에게 제사 지내던 자리가 있다

동물과 풀벌레의 영혼을 달래주던 제사터
자연 만물에 대한 생명존중 사상 있는 곳

 

강진읍 목화마을에 풀벌레들에게 제사지내던 여제단 자리가 있다.
강진읍 목화마을에 풀벌레들에게 제사지내던 여제단 자리가 있다.

 

목화마을에는 아주 특별한 제단(祭壇)이 있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아주 미천한 생명에게까지 제사를 지내는 여제단(厲祭壇)이 있었다. 지구 온난화가 심화돼 기상이변이 속출하는 세상에서 목화마을에 있었던 제단을 통해 전해오는 생명존중 사상은 당면한 지구의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 그 해답을 던져 준다.  

목화마을 뒷산에는 큰 벼락수와 작은 벼락수라는 계곡이 있다. 이 벼락수라는 계곡에는 옛날에 형제가 살았는데 싸움이 심해 하늘에서 벼락을 자주 내렸다.

그 벼락 때문에 땅에서 살던 여러 동물과 풀벌레등이 많이 죽었다. 이 넋을 위로하기 위해 매년 음력 2월 1일 제관을 정하여 여제단에서 제사를 올렸다. 마을사람들은 이곳을 여지당이라 불렀다.

여지당은 동성리 607번지 지금의 목화마을 마을회관 바로 아래쪽에 있었다. 과거에 향교에 출입하던 사람들이 음력 2월 1일에 서성리 탑골 사직골에 있는 사직단에서 제를 지내고 난 후 여지당으로 옮겨와 제를 지냈다.

‘사직단’은 토지를 다스리는 사신(社神)과 곡식을 다스리는 직신(稷神)을 모신 단을 말하며 이곳에 제를 올리는 것을 ‘사직제’라고 한다. 매년 봄과 가을에 봉행했다. 강진에는 사직단이 강진읍 탑동마을 고성사 올라가는 길 지금의 고성저수지 옆에 있었다. 수국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이 일대를 사직골이라 불렀다.
 
강진의 유지들이 탑동 사직단에서 사직제를 올리고 그 다음으로 제사를 올린 곳이 목화마을에 있는 여제단이었다. 여제단으로 가서 땅에서 살던 여러 동물과 풀벌레등에게 제사를 올린 다음에야 향교에서 제를 지냈던 것이다. 이후 향교를 출입하던 사람들이 제를 지내지 않게되자 마을 사람들이 제를 주관하여 지냈으나 30여년전 그마저 연명이 끊겼다. 

서울 평창동에 여제단이 있었던 자리에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서울 평창동에 여제단이 있었던 자리에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여제단은 조상을 모시는 종묘, 땅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사직단과 함께 나라의 기본적인 제사를 지내는 장소였다. 동쪽의 성황당, 서쪽의 사직단과 함께 지방 관아에서 세우는 세가지 필수 제단 중의 하나였다. 전국에 적지 않은 유적들도 남아 있다.

여제(厲祭)는 주인도 없고 사당도 없는 귀신을 위해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흔히 억울하게 죽은 귀신이나 미혼 남녀의 귀신, 자손이 없는 무주신들이 산 사람에게 해를 끼친다고 여겨졌는데, 이들을 달래고 위로하여 마을의 역질이나 재난을 막아내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런 귀신들은 사람들에게 달라 붙어 탈이 나기 때문에 제사를 지내서 이를 미연에 방지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렇듯 여제단의 기본 기능은 죽은 사람에 대해 제사를 올리는 것이다.

그런데 목화마을에서 지냈던 여제는 땅에서 살던 여러 동물들과 풀벌레 등에게 제사를 올리던 여제였다. 마을에서 싸운 형제의 이야기가 도입되고, 하늘에서 벼락을 내려 싸움 많은 형제들 때문에 동물들과 풀벌레가 억울하게 많이 죽었다는 신화적인 요소가 가미되면서 그 당위성을 확보했다.

여기에는 인간에게서 확장돼 만물로 향하는 생명존중사상이 담겨 있다. 동물이나 이름없는 풀벌레도 인간과 다름없이 중요한 존재라는 것이다. 

생명존중 사상은 살아있는 모든 것을 존귀하게 여기고 모든 생명에 가치를 부여하는 사상이다. 우리의 전통적인 생명존중 사상에는 인간과 자연을 구별하지 않는 조화의 정신이 내포되어 있다. 

강진향교는 조선시대 국립 교육기관이다. 향교옆에 여제단을 두고, 이곳에서 이름없는 풀벌레들의 영혼까지 위로하는 제사를 올린 강진 사람들의 생명존중사상이 목화마을 여제단터에서 전해지고 있다./주희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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