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영 주민들 나서서 기증품 수집 도와주었다

와보랑께박물관이 처음 생겨나고 지금까지 운영되기까지 내가 살고 있는 도룡마을 주민들의 도움이 컸다. 처음 주변에서 쓰지 않는 오래된 물건들을 창고에 수집하고 있을 때에는 도룡마을 주민들은 의아하게 생각하기도 했고 “쓸때없는 것 뭐하러 모으느냐”며 핀잔을 주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와보랑께박물관이 정식으로 만들어지고 박물관다운 모습이 갖춰지면서 초창기에는 도룡마을 주민들이 나서서 민속품을 기증해주었고 이는 박물관이 운영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90년대 후반 무렵 내가 민속품과 같은 오래된 물건들을 수집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도룡마을의 한 주민이 나를 찾아왔다. 자신의 집을 새롭게 뜯어 고칠예정인데 혹시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와서 가져가도 좋다는 것이었다. 전시품은 많을 수록 좋다는 생각에 곧바로 그 주민의 집으로 갔다. 

집안 곳곳을 둘러보던중 마루 기둥에 걸려있던 오래된 장바구니 하나가 눈에 띄었다. 이 장바구니는 예전 전기줄을 활용해 장바구니를 만든 것으로 현재 박물관에도 전시되고 있다. 오래된 장바구니 속을 들여다보니 여러종류의 끈이 모아져있었다.

50~60년대에 사용했을 법한 새끼줄부터 칡넝쿨의 껍질을 벗겨 만든 끈, 비교적 최근에 공장에서 만든 것으로 보이는 노끈 등 수십여종의 끈들이 바구니속에 담겨있었다. 이 속에는 삼나무 껍질로 만든 끈도 있었는데 이는 가난했던 시절 우리의 생활모습을 잘 알 수 있는 물건이다는 생각에 곧바로 박물관으로 가져왔다.

또 한번은 한 어르신이 돌아가시기 직전 나에게 자신이 시집올 때 가져왔던 장롱을 기증하고 싶다고 해서 가져오기도 했다. 장롱속에는 광복 이전 입었던 것으로 보이는 아주 오래된 한복도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어떤 남성은 자신이 직접 차를 몰고 운전하고 다니면서 버리기 위해 내놓은 오래된 농기계들을 수집해서 나에게 가져다주기도 했다. 이 농기계 속에는 복토기라고 해서 삽처럼 생겼으나 복토작업을 할때 썼던 장비와 아주 오래된 제초기 등 농촌에서도 60~70년대 이전 사용했던 물건들이 수집되기도 했다.

어느 날은 철거직전인 자신의 집에서 쓸만한 물건을 가져가라는 요청이 들어와 방문해서 ‘삼학소주’ 선물세트를 발견하기도 했다. 이 소주는 포장지도 뜯지 않고 병속에 소주가 그대로 들어있던 제품이었다. 

아직도 박물관 2층에 올라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사진을 보면 한 사람이 생각난다. 병영에 거주했던 고 김흥연 선생이다. 평소 나와 친분이 두터웠는데 자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내가 차를 운전하고 가까운 곳은 모셔다 드리기도 할 정도로 가깝게 지냈다. 

어느날은 김흥연 선생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갑자기 자신과 장흥을 같이 가자는 것이었다. 나는 곧바로 차를 타고 김흥연 선생과 함께 장흥을 찾아갔는데 목적지는 한 사진관이었다. 그곳에서 김흥연 선생은 1964년 촬영했던 사진은 인화해두었고 총 3장을 인화했다. 그중 1장은 병영양로당에 기증했고 1장은 자신의 집으로 나머지 1장은 나에게 선물했다.

이 사진은 1968년 김흥연 선생이 직접 꽃밭등이라는 곳에 올라가 병영면소재지를 촬영한 사진이었다. 총 3장의 사진은 이어붙여서 하나의 사진으로 만든 것으로 당시 병영 지역의 주택 모습을 볼 수 있는 좋은 자료다. 사진속 병영면의 주택은 대부분 초가집이고 2~3채 정도만 기와집이 눈에 띈다. 병영의 60년대 모습을 알 수 있는 좋은 사진이다.    <정리=오기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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