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기슭에서 땅일궜던 선조들의 일터가 있다

보은산 자락에 돌담으로 
계단밭 만들어 경작
강진향교 뒤편에 산재
70년대까지 경작

 

강진향교 뒷쪽 보은산 기슭에 옛 돌담들이 즐비하다. 여름에는 숲속에 묻힌다.
강진향교 뒷쪽 보은산 기슭에 옛 돌담들이 즐비하다. 여름에는 숲속에 묻힌다.

 

강진향교 주변 보은산 기슭은 오래전 많은 사람들이 살았다. 1930년대 사진을 보면 지금의 남성리는 강진농협 건물이 있는 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 

민가는 지금의 중앙로 북쪽에만 소수 분포돼 있었다. 바닷물이 가까이 들어 왔으니 집지을 땅이 없었고, 마을 형성에 가장 중요한 식수를 확보하는데도 불리했다. 서쪽 서성리는 주거지역이 아니었다.

대신 지금의 동문샘을 중심으로 큰 마을이 있었다. 여기서 확장된 마을은 자연스럽게 보은산 자락을 따라 교촌리쪽으로 세를 뻗쳐 나갔다. 교촌리 일대는 땅이 좋고 무엇보다 식수를 확보하기에 좋았다. 보은산에 스며든 빗물이 교촌마을 일대에서 용솟음 쳤다.

교촌마을 뒤편 보은산 기슭에는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농사를 지었던 흔적이 있다. 지금은 숲에 덮혀 있어 멀리서는 보이지 않지만 강진향교 좌측 임도를 따라 걸어 올라가면 양편으로 돌담을 쌓아 밭을 만든 터들이 줄지어 있다. 

70년대 초반 강진향교 뒷편의 모습이다. 민둥산에서 농사를 지었다.
70년대 초반 강진향교 뒷편의 모습이다. 민둥산에서 농사를 지었다.

 

돌담은 밭의 경계를 표시하기도하고, 경사진 땅에서 흙이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기도 한다. 배수로도 여기저기 나 있다. 향교뒷편 돌계단밭은 규모가 크다.

숲속에 많은 부분이 숨어 있어 정확한 규모는 알기 어렵지만 10,000㎡ 이상은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담은 높은 곳은 1m가 넘는 것도 있고, 길이가 거의 50m에 달한 것들도 많다.

돌의 크기가 그렇게 크지 않은 것들이여서 돌담을 쌓기까지 수많은 손길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산의 경사를 따라 계단식으로 돌담들이 세워진 것으로 봐서 이곳이 한때 경작지였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이 돌담들은 계단식 밭을 지탱하는 수단으로 쌓기도 했고, 곳곳에 집터를 둘러싸고 있는 돌담도 보인다. 아주 오래전 강진읍 사람들이 산 기슭에서 밭을 일군 흔적들인 것이다. 

향교뒷쪽 산 지형은 거의 평지나 다름없어서 큰 나무와 잔목이 없다면 언제라도 경작이 가능한 곳이다.

논이 부족했던 시절 
조상들의 생생한 일터 
지역 농업유산으로 
관리 보존하면 좋을 듯 


교촌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향교 뒤쪽 보은산 기슭에는 집들이 몇채 있었고, 주변에 돌담으로 된 밭이 많았다. 이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밭을 경작하기도 했지만 주로 강진읍내에 논밭이 없는 사람들이 이곳까지 오르락 내리락하며 보은산 자락을 일궈서 작물을 재배했다.

겨울이면 돌담들이 온전히 드러난다.
겨울이면 돌담들이 온전히 드러난다.

 

교촌마을의 한 주민은 “70년대까지만 해도 보은산은 민둥산이나 다름 없었고 향교뒷쪽 일대는 그냥 밭이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봄철이면 밭을 일구는 사람들이 산허리를 점령하다시피 했다”고 말했다.

보은산 기슭 돌담은 보은산 서쪽에도 많다. 최근 등산로가 개설된 세계모란공원에서 산허리를 따라 길을 걷다 보면 논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돌담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곳역시 오래전 강진읍 사람들이 산기슭을 일궈 경작을 했던 흔적들이다.

경사도로 봐서 향교 뒤쪽 보다 가파른 곳이여서 농사짓기에 그렇게 좋은 환경이 아니다. 더구나 이곳은 서향이여서 작물에 좋았을리도 없다. 건너편에는 강진고 뒷산자락이 병풍처럼 버티고 있어 해지는 시간도 빠른곳이다. 그러나 이 일대 역시 꽤 많은 돌담들이 있는 것으로 봐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경작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돌담의 상당부분이 무너져 내렸다.
돌담의 상당부분이 무너져 내렸다.

 

이 일대에는 집터도 여러곳 있다. 아직 허물어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 콘크리트 벽도 보인다. 해가 가장 늦게 뜨고 해가 가장 빨리지는 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생활이 어떠 했을지 짐작이 가능할 것도 같다.

보은산 기슭의 돌담들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불과 50여년전만 해도 보은산의 환경이 완전히 달랐고, 인구도 지금보다 네배는 많은 12만명대였기 때문에 살곳을 찾아 집요하게 공간을 넓혔던 당시 주민들의 삶을 지금기준으로 추정하기는 어렵다. 산기슭에 돌담이 있는 보은산, 그곳은 한때 땅을 일구고, 먹거리를 재배하던 사람사는 이야기가 있다.            /주희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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