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9월 어느날 오후의 일이다. 9개 읍면장들이 지금은 폐교된 성전 수암초등학교서 회의를 마치고 성전 삼거리 전방에 회식을 하기위해 모였다. 

지금 환경과 생각하면 곤란하다. 읍면장들이 수암초등에서 회의를 한 것은 성전면사무소에 열 명 들어갈 회의공간이 없었기 때문이고, 회식하기 위해 모인 전방은 탁자도 없는 선술집이었다.

93세가 된 옴천 황곡마을 최병규 어르신의 증언이다. 당시 32세로 읍면장회의때 면장을 수행했던 옴천면 호병계장이었다. 

그 자리에서 옴천의 한일용(韓一龍) 면장이 “오늘은 내가 한잔 사겠다”고 나섰다. 한 면장은 육군 대위출신이였다. 61년 5.16군사구테타가 일어난 후 대부분 면의 면장을 군인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을 때다. 성전면장은 상사, 작천면장도 상사 출신이었다.

한면장은 유일하게 대위 출신이여서 다른 면장들에게 위세가 쎘다. 술도 아주 좋아했다. 옴천의 규모가 작고 재정적으로 어려웠지만 그 때는 강진읍이나 성전면이나 어렵기는 다 마찬가지였다.

옴천면장이 맥주를 4병 시켰다. 맥주가 아주 귀할 때다. 두툼한 사기잔이 나왔다. 잔을 아홉 개 놓고 옴천면장이 술을 따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맥주가 냉장이 돼 있을 리 없었다. 사기잔도 뜨뜻했다. 맥주 거품이 사정없이 넘쳤다. 한 병 가지고 큰 사기잔으로 여섯잔 이상이 나왔다.

거품이 넘치자 면장들이 연신 사기잔을 혀로 핥았다. 다른 면장이 웃으며 그랬다. “옴천면장은 맥주도 못 따른당가” “맥주 애낄라고 그랑거 아니여” 좌중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그 후로 몇몇 면장이 농담으로 시작한 말이 돌고 돌아 술자리의 화제가 됐다. 술잔을 가득 채우지 않으면 “옴천면장 맥주따르데끼 한다”는 말이 단골처럼 등장했다.

그 말이 돌고돌아 서울까지 갔고, 부산, 대구, 인천까지 퍼졌다. 우리 는 잘 모르지만 ‘옴천면장 맥주따르데끼 한다’는 말을 아는 사람들이 전국에 의외로 많다. 큰 관광자원이다.  

31일부터 3일간 종합운동장에서 하맥축제가 열린다. 강진에서 억류생활을 했던 하멜과 ‘옴천면장 맥주따르데끼’가 만나는 장이다. 네덜란드는 세계적인 맥주 강국이다.

하멜이 소속돼 있던 동인도회사가 장거리 항해에서 쉽게 변질되는 맥주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하멜도 맥주를 좋아했을 것이다. 강진은 맥주축제를 개최할 역사적 조건이 충분하다. 하맥축제장으로 가 보자.<주희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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