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국/ 전 순천향대 교수(작천 이마마을 출신)

필자는 수년 전 부터 김해김씨 삼현파 서울 종회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선조들의 행적에 관심을 가졌으며, 최근 몇 년 동안 부친의 조상에 대한 지극한 관심과 열정을 목도하면서, 족보에 대하여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삶의 방향성을 경시하고, 속도위주의 삶을 중시하는 생활을 해오지 않았는지 반조(返照)해보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漢字 위주로 기록된 족보는 접근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족보의 한글 전산화 필요성), 그 중요성(삶의 방향성과 속도)도 인식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구상에 수많은 민족이 존재하나 대한한국과 이스라엘 만큼 선조의 뿌리를 중요시하는 민족은 드물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대한한국에서는 그런 美風이 요즈음 점차 쇠퇴하는 것과는 달리 이스라엘은 그 전통을 굳건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근래에 성경 역대상(歷代上)을 읽으며, 한동안 삶의 방향성을 상실한 이스라엘 민족이 어떻게 다시 그것을 회복할 수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경 역대상 초반부(1장-9장)에 지루하리만큼 자세하게 이스라엘 민족의 족보에 관하여 기술하고 있는데, 왜 역대상 記者(에스라)는 포로 귀환 후 선조들 개개인의 발자취를 그렇게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을까?

이스라엘 민족이 바빌론에 의하여 망하고(BC586), 페르시아의 3차에 걸친 포로 귀환 정책으로 예루살렘에 정착하였으나, 오래 동안(약150년) 고국을 떠났던(diaspora) 귀환공동체는 그들의 정체성(identity)과 삶의 方向性을 상실한 체 혼란한 상태였습니다.

에스라는 그 혼란을 선조들의 기록을 통한 가르침을 통하여 해결하고자 하였습니다. 현재 전 세계 인구의 불과 0.2%를 차지하는 이스라엘 민족이 30%의 노벨상 수상자와 막강한 정치 경제적 영향력 등을 유지하면서, 열악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독자적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근본 요인도 선조들의 기록으로 남긴 교훈(전통 文化등)을 잊지 않은 것이 중요한 요인중 하나이겠지요.

올해 초부터 우리 집안의 한문 족보를 한문 및 한글을 병기(倂記)하는 전산화 작업과 홈페이지 구축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약 150년 시차(時差)를 두고 건립된 병영의 효의문(孝義門)(1828년)과 작천 이마 마을의 효현문(孝賢問)(1983년)의 이름(名)을 성찰함으로써 얻은 교훈을 독자 여러분들과 공유했으면 합니다.

효(孝)는 육신(肉身)의 부모와 영적(靈的)인 부모에 대한 孝이고
현(賢)은 자비(慈悲)와 어질고(仁) 사랑(愛)의 賢이며
의(義)는 올바르고 正義로움의 義입니다.

이것은 절대자 하나님에 대한 경(敬)을 바탕으로한 효(孝)와 사랑(愛)과 정의(義)로운 삶을 영위하라는 선조의 가르침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앞서 언급한 세 가지 덕목은 다양한 고전(古典)에서 다음과 기술하고 있습니다.

▲중국 상고시대 정치를 기록한 서경(書經)의 홍범구주(洪範九疇)중 삼덕(三德, 정직 강 유)의 가르침이고, ▲유대교 신비주의 종파인 카발라의 세피로트 나무(생명 나무)가 상징하는 우주창조의 10가지 신성한 숫자를 세 부류(조화 자비 공의)로 나눈 결과이며, ▲유교를 포함한 동양 철학의 핵심인 주역과 송나라 성리학자 주돈이(1017-1073)의 태극 도설의 근간되는 원리를 내포한 천부경(天符經)도 세 가지 덕목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천부경은 단군철학의 핵심으로, 삼태극(무극 태극 황극)이 天 地 人을 통하여 생장수장(生長收藏)하는 원리를 10개의 숫자로 설명한, 수리철학의 극치이며, 우주창조의 이치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기독교적인 삶의 핵심인 예배(禮拜)는 기도와 말씀(기록된 말씀-성경, 肉身이 되신 말씀-成育身-예수그리스도, 선포된 말씀-설교)인데,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孝,하나님과 合一)이고, 말씀의 핵심은 사랑과 정의로 세 가지 덕목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중요한 가르침(孝 賢 義)의 역사적 현장이 고향 강진에 위치하고 있다는 자부심은 내가 누구이며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즉 나의 삶의 좌표를 설정하는데 결정적 요인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필자는 김구(1876-1949) 선생이 ‘나의 소원’에서 말씀하신, 군사강국도 경제강국도 아닌 문화강국을 달성하는 출발점이 우리의 정체성 확립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며, 그것은 선조들과의 대화(기록)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눈 덮인 광야를 가는 이여, 아무쪼록 어지럽게 걷지 마라, 오늘 그대가 남긴 발자국이 뒤따라오는 사람들의 길잡이가 되리니.’ 조선후기 문인 이양연(1771-1853)의 답설(踏雪)에서 처럼 후인들을 위하여 효의문과 효현문의 주인공처럼 살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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