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 후 11년 하세월…균형발전 300프로젝트로 미래의 날개 달다

91년 강진공업전문대학 인가
서남부지역 최초 공업전문대학 추진
주인 세차례 바뀌고 어렵게 개교

 

성화대학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던  2011년때의 모습이다. 항공특성화대학이었던 성화대학은 각종 비행기 관련 시설이 많았다.
성화대학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던  2011년때의 모습이다. 항공특성화대학이었던 성화대학은 각종 비행기 관련 시설이 많았다.

 

옛 성화대학 건물과 부지가 2012년 폐교 이후 11년만에 활용의 길이 열리게 됐다. 강진군이 전남도가 진행한 ‘전남형 균형발전 300 프로젝트’ 사업에 선정됨으로서 옛 성화대에 내년부터 도비 180억원을 비롯해 군비 150억원등 330억원과 민간자본 120억등 총 450억원을 투입해 4차 산업의 핵심기지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강진군이 부지와 건물 매입을 위해 자체 예산을 확보해 놓은 56억원은 제외된 금액이기 때문에 옛 성화대학에 투입되는 돈은 사실상 500억원이 되게 된다. 이 많은 돈을 적재적소에 잘 활용하면 옛 성화대학 건물과 부지는 다시 날개를 달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전남형 균형발전 300프로젝트가 성사된 이때에 옛 성화대학의 역사를 다시 되짚어 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이번 ‘다시 찾는 그때 그현장’은 성화대학이다. 1990년대 초 강진 사람들은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강진에 대학교가 설립된다는 것이었다. 대학교 설립은 강진 주민들의 오랜 숙원이었다. 강진농업고등학교를 4년제 대학으로 바꿔보려는 노력을 다방면으로 했으나 오랫동안 물거품이었다.

대학설립 인가는 1991년에 나왔다. 당시에는 전문대 설치가 유행처럼 번지던 시기였다. 정부에서는 학생들이 취업의 전문성을 기를 수 있는 전문대학 설립을 적극 권장하고 있었다. 산업현장에서는 전문대 졸업 수요자가 급증했다. 교육부가 일정한 조건만 갖추면 전문대학 허가를 많이 내줬다. 영암 학산면의 동아보건대학이나 나주시 다시면의 고구려대학등이 이때 들어섰다. 성전면에 성화대학이 개교한 것은 1997년이다.

480명이던 전교생 2,700명까지 증가
2012년 학내문제로 폐교 새주인 물색 
공매가 268억에서 120억까지 떨어졌으나 주인 찾지 못하고 11년 하세월

 

인가된 대학은 강진공업전문대학이었다. 전남서남부지역에 최초로 설립되는 공업전문대학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벽봉학원이란 재단을 설립한 장충진(당시 62세)이사장은 성전면 월평리에 학교를 세워 건축과와 전자과등 6개 학과에 학생 480명을 모집해 94년 3월 개교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전남서남부지역 최초의 공업전문대’ 강진공업전문대는 출발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94년 3월 개교를 목표로 성전면 월평리 일대에 부지매입이 추진됐으나 여러 가지 난관에 부닥쳤다. 그러다가 94년말 경기도 성남출신인 정승기란 사람이 10억원에 재단을 인수한다. 

소자본으로 우후죽순으로 생겼던 전문대학들은 구조적으로 재정적인 어려움이 상존했다. 교수직이라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일자리가 수십개 창출되면서 여기에 들어가려던 경쟁이 치열했다.

사립대학이다보니 인맥을 동원한 로비가 횡횡했을 것이고, 자비로 학교를 세우는 재단 입장에서도 학교건립을 위한 재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같은 상관관계는 결국 큰 사고를 내고 만다. 학교는 정승기 이사장을 거쳐  이행기 이사장으로 주인이 바뀌었다. 학교는 그해 3월에 개교를 했다.

‘결국 자치단체가 나서야’ 여론
강진군 부지 매입준비, 민간 투자 확보
‘300 프로젝트’ 조건 완벽하게 준비


한편으로 1997년 세림학원이 본격적으로 운영을 시작한 성화대학은 승승장구했다. 성전면 월평리 224번지 6만여평의 면적에 ‘봉사하는 직업인, 전문적인 국제인, 창조하는 지성인’이라는 건학이념을 내세웠다. 첫해 건축과, 전기과, 전산정보처리과, 공업경영과 4개학과 320명을 모집해 본격적으로 대학이 문을 열었다.

성전면 소재지이다. 폐교 후 문을 닫은 업소들이 속출했지만 이번 프로젝트 유치로 다시 한번 비상을 꿈꾸고 있다.  
성전면 소재지이다. 폐교 후 문을 닫은 업소들이 속출했지만 이번 프로젝트 유치로 다시 한번 비상을 꿈꾸고 있다.  

 

이후 성화대학의 모습을 보면 급성장한 과정을 볼 수 있다. 98년도에는 인터넷통신과, 항공운항과등 9개학과가 신설되었고 정원도 크게 늘어나 12개학과 1천200명의 신입생들이 입학했다.

 건축디자인과, 카지노경영과, 광고디자인등 8개학과를 신설한 99년도에는 총19개학과 1천680명의 신입생들이 성화대학을 찾았다. 대학본부가 위치한 세림관이 준공된 99년에는 학생들의 체육관인 관동관이 개관하고 목포정보기술교육원, 진도캠퍼스, 중소기업지원센터가 개소식을 가졌다.

다음해인 2001년에는 체육계열 골프전공, 경기지도전공등이 새로 신설돼 총10개계열 3개학과 33개 전공코스로 1천520명의 신입생이 성화대학을 지원했다. 2000년부터 기술지도대학으로 선정되었고 창업보육센터 지정대학이 되었다. 또한 특성화 교육부평가, 관광산업육성, 신직업교육 문화육성 우수대학으로 각각 선정됐다.

그러나 2000년들어 성화대학은 끝없는 분란에 휩싸였다. 2006년 교육부 감사에서 이 대학 설립자 겸 이사장이 국고보조금과 교비 등 58억원을 횡령한 사실이 밝혀져 임시이사가 파견됐고 2010년과 2011년에도 이사장이 국고보조금 및 교비 횡령, 교수 임용 비리 등으로 구속됐다. 

성화대학은 이런저런 우여곡절 속에 결국 폐교 조치를 받으며 2012년 2월 29일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폐교당시 성화대학의 총 학생수는 2천770여명이었다. 교수숫자만 82명에 달했다.

성화대학은 교과부로부터 폐교 조치를 받앗지만 학교 상황이 그렇게 나쁜게 아니었다. 성화대학은 개교후 폐교직전까지 신입생 모집에서 미달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전국 146개 전문대학 중에서 50% 안에 드는 대학이었고, 전남에서는 목포과학대 다음으로 잘나가는 학교였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성화대학의 폐교가 흑자도산이라는 해석을 하기도 했다. 내실있는 대학이 재단비리 때문에 망했다는 하소연이었다.

그런 괜찮은 대학이 갑자기 공중분해 되어 버렸고, 오랫동안 건물과 부지가 방치됐다. 268억원에 이르던 공매가는 120억까지 떨어졌으나 관심을 보이는 구매자가 없었다. 옛 성화대를 활용하자는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다.

강진군사회단체협의회와 일터를 잃은 성화대 교수들이 전남도에 성화대학을 인수해 도립대학을 만들어달라고 건의했으나 불가판정을 받았다. 초당대학교와 전북 군장대학교가 인수의사를 밝혔으나 유야무야 됐고, 고흥군이 성화대학을 인수해 경비행기 착륙센터 사업을 추진할 것이라는 말도 있었으나 용두사미였다. 

또 광주의 큰 대학이 부지와 건물을 매입하게해서 분교를 내게 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개인이 매입해 노인요양원을 만들거나 사이버 대학을 설립하는 움직임도 있었다. 

그러나 설령 큰 돈을 들여 땅과 건물을 매입한다 해도 오랫동안 방치된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목적대로 운영을 정상화하기 까지 막대한 후속 자금이 있어야 한다는 부담때문에 누구도 달려들기 어려운 부동산으로 분류돼 왔다. 2015년에는 강진군이 전남도공무원연수원 유치를 추진하면서 후보지로 옛 성화대를 활용하겠다는 계획도 세웠지만 전남도가 최종 결정한 부지는 현재 전남도인재개발원이 들어선 도암 만덕초등학교 자리였다.  

결국 옛 성화대 땅과 건물을 살리기 위해서는 자치단체가 나서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말부터 강진군이 성화대 건물과 땅을 매입하는 일을 시작했고, 여기에 올 5월에는 성화대에 투자할 민간기업과 MOU를 채결함으로서 ‘전남형 균형발전 300 프로젝트’에 선정되는 결정적인 조건을 확보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주희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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