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물이 들어왔다… 고대 해양문화가 꽃피웠다

 

팔영마을은 마을 뒷산이 팔자형상이라 하여 팔영으로 불리우게 되었다. 팔영마을 일대는 고대 해양문화권이였다. 주변에는 바다와 관련된 지명이 수두룩하다. 인근 장동마을앞에는 도루메산이라고 해서 작은 잔등산이 있다.

배가 돌아서 나간 곳이라는 뜻이다. 강진만으로 들어온 배는 서쪽끝 이곳 장동마을까지 깊숙히 들어와서 도루메산을 돌아 다시 나갔던 것이다.

마을앞에 논이 펼쳐져 있다.
마을앞에 논이 펼쳐져 있다.
마을안에 밭이 많다.
마을안에 밭이 많다.

 

팔영마을의 북동쪽에는 강두머리가 있다. 배가 닿았던 곳이었다. 또 지금의 차경마을 인근 잔등은 도선등이라 불리었고, 도선등의 건너편을 돌임이라고 했다. 이곳 역시 배가 돌아나간 지역이였다.

팔영마을 인근에는 큰 고인돌이 있다. 선사시대부터 주변 바다에서 수렵과 채집을 하며 사람이 살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강진만 바닷물이 장동마을앞까지 출렁인 것을 상상해 보면 강진만에는 탐진강과 반대편 영파리쪽에 커다란 내수면이 형성돼 있었다.

마을 우물터다.
마을 우물터다.
정자옆에 운동기구가 있다.
정자옆에 운동기구가 있다.

 

이곳은 지금의 만덕산이 막아주기 때문에 태풍이 불어도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 것이고, 광활하게 형성된 갯뻘에서는 해산물이 풍부하게 나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뒷산을 넘으면 바로 성전이나 해남으로 연결돼 상품이 유통되기에 적지였을 것으로 보인다.

교회가 있다.
교회가 있다.
림스가든이다.
림스가든이다.

 

마을주민들은 청승정 남쪽 만덕산에 있는 임란때 피난온 부인이 베틀을 차려 놓고 베를 짰다는 베틀굴, 벽을 두드리면 북소리가 난다하여 북굴, 베틀굴 위쪽에 있는 굴로 금을 캤었다고 전해지는 금굴, 안에서 도리깨질을 할 정도로 넓어 이름지어진 도리깨굴등에서 놀던 일들을 즐겁게 회상한다.

예전에 12굴이 있다고 전해지기는 하지만 정확한 위치를 아는 곳은 5곳정도 된다. 팔영마을에는 바위위에 말발굽과 마차바퀴 흔적이 남아 있어 하늘에서 마차가 내려와 바위를 밟고 넘어갔다는 얘기가 전해지는 장군바위가 있다. 그곳을 찾고자 했으나 몇 년전 도로공사로 흙에 묻혀 버려 현재는 그모습을 찾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주희춘 기자

저작권자 © 강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