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소영/ 치매안심관리사

‘선입견’이란 어떤 대상에 대하여 이미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고정적인 관념이나 관점을 뜻한다. 그렇기에 개개인이 가진 선입견은 각자의 경험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나에게 ‘어르신’이란 단어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70대의 우리 엄마였다. 엄마로 인해 ‘어르신’에 대해 내가 가지게 된 선입견이라면 ‘목소리가 크다’, ‘배움이 적어 글을 제대로 읽고 쓸 수 없다’, ‘고집이 세다’, ‘집중력이 낮다’ 등 그다지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강진군보건소 치매안심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하는 ‘스마트 뇌총총’이라는 치매예방교육이 있는데 강사를 해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 몇 년 전 치매안심센터에서 진행했던 치매안심관리사 양성 과정에 참여해 수료했었는데 그 인연으로 연락이 온 것이었다.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설명을 들어보니 나를 포함한 세 명의 강사가 개인당 세 명의 어르신을 맡아 사전에 교육받은 내용을 강의해주면 되는 거였다. 혼자서 하는 것도 아니고 담당하는 어른이 세 명이라고 하니 크게 힘들 것 같지 않았다. 무엇보다 계속해서 관심이 있던 분야였기에 흔쾌히 수락했다.  

얼마 뒤 다른 두 선생님과 함께 강의를 위한 사전 교육을 받으러 갔는데 아뿔싸! 내용이 쉽지 않았다. 교육 내용은 크게 인지자극활동 워크북, 감각자극활동 워크북, 3D펜 세 가지였다.

인지자극활동 워크북은 개수 세기, 따라 그리기, 사진 보고 유추하기 등의 문제들로 이루어진 학습지였고 감각자극활동 워크북은 세모, 네모, 동그라미 등의 도형으로 판에 알맞게 꽂거나 새로운 모양을 만들어보는 활동이었다.

이 두 가지는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모두에게 생소한 3D펜 활동이었다. 3D펜에 필라멘트라는 선을 넣고 전기를 꽂아 열을 가하면 필라멘트가 녹아 나오게 되는데 이걸 이용하여 도안을 따라 그리거나 만들기를 하는 내용이었다.


주어진 도안이 드림캐처, 꽃, 동물로 간단하지 않아서 더 어렵게 느껴졌다. 하루를 꼬박 채워 이틀 동안 이루어진 교육을 듣고 난 후 서로를 쳐다보는 표정에 걱정과 난감함이 교차했다.

 ‘어르신’이라고 하면 엄마부터 생각이 나던 나는 마음속에 불안이 더욱 움트기 시작했다. 이 수업을 엄마와 함께 한다는 상상을 하니 눈앞이 깜깜해지는 느낌이었다. ‘문제가 풀리지 않아 짜증을 내는 모습’, ‘어려워서 지루해하는 모습’, ‘조금 해보다가 금방 포기해버리는 모습’ 등 자꾸 부정적인 모습만 떠올랐다. 

글을 읽지 못하는 엄마였기에 비슷한 연배의 어르신이라면 엄마처럼 글을 읽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고 그러면 수업 진행이 훨씬 어렵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되었다. 

속절없이 시간은 흐르고 그렇게 맞이한 수업 첫날, 생각했던 대로 어르신들은 문제를 어려워했다. 다만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은 막히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어렵다고 짜증을 내면 어쩌지, 중간에 포기해버리면 어쩌지 했던 걱정이 무색하게 열정적인 모습이었다. 

수업이 진행될수록 실력이 늘어 어려워하던 문제를 척척 푸는 것도 모자라 어떨 때는 창의적인 답안으로 감탄을 자아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크게 걱정이 되었던 3D펜 활동 또한 생각했던 것보다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도안을 완벽하게 따라 그리지 못해도 포기하지 않았고 결과물이 조금 예쁘지 않더라도 본인들이 만들어냈다는 그 자체에 성취감을 느끼며 좋아하셨다. 

부정적인 생각들로 가득 찼던 수업 전과 다르게 마지막에는 긍정적인 영향만을 남겼다. 그동안 ‘어르신’에게 가졌던 선입견이 산산이 부서지며 오히려 그들의 열정과 지혜로운 모습에 내가 배우는 시간이 되었다. 

특히 교육을 끝내놓고나서, ‘나이’, ‘어르신’에 대해 가지고 있던 선입견에서 벗어나니 ‘엄마’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교육을 듣는 어르신들은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개인마다 차이는 있다 하더라도 글을 읽을 수 있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릴 때 학교에서 배운 어르신도 있었지만 나이가 든 후 한글학교 등을 통해 글을 배운 어르신도 있었다.

어쩌면 엄마에게도 배움의 기회가 제공된다면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이, 아니 확신이 들었다. 비단 엄마뿐이 아니라 삶의 무게에 밀려 배움의 기회가 적거나 없었던 모든 어르신들 모두가 능히 해내실거라 거듭 확신한다. 

그분들에게 글로나마 응원을 보내본다. 진부한 표현일지는 몰라도 나이는 숫자일 뿐 당신의 한계를 결정지을 수는 없다고, 여전히 스마트하고 뇌가 총총하며, 배울 수 있고 해낼 수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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