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국/ 전 순천향대 교수 (작천 이마마을 출신)

초등학교 입학전 어느 해인가 눈 쌓인 겨울 저녁! 작천 이마마을에서 십여리 떨어진 병영교회에서 오신 목사님을 모시고 고모집 희미한 등잔 아래서 예배를 드렸던 그림같던 장면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때 같이했던 꼬맹이들은 어디서 무었을 하며 살고 있는지...고모님! 고통 근심 걱정 없는 하늘나라에서 잘 지내고 계시죠? 고모님이 뿌리신 믿음의 씨앗 덕분에 저의 가족 구성원 그리고 형제 자매들은 잘 지내고 있습니다.

}결혼한지 일년도 안 된 새색시가 일본에 간 신랑을 기약 없이 기다린 이십여년 세월! 필자 부친께서 일본에 갔으나 고모부는 만나지 못하고 일본인 부인과 자식들만 만나고 오셨지요. 그 후 몇 년 더 사시다가 소천하신 고모님! 전남대 교환 교수로 파견근무 할 때인 ‘98년 가을! 도암면 석천 마을 어귀에 초라하게 계신 고모님 산소를 찾아뵈었지요.

도대체 믿음이 무엇이기에 그토록 외롭고 고통스러웠을 삶을 그렇게 의연하고 생동감 있게 사셨을까? 그 힘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주요 종교생활의 시작은 모두 믿음으로부터 시작됨을 깊이 성찰해야겠습니다. 기독교는 사도신경(使徒信經)에서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의 믿음을 강조하고,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최종 목표는 하나님 사랑을 바탕으로 한 이웃사랑인데, 그 시작은 믿음으로부터입니다.

기독교적인 삶의 총체적 결론을 칭의, 성화, 영화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깊은 기도를 통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신칭의 以信稱義. 의화義化 justification)이 시작이지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히브리서 11장 1절). 보이지는 않으나 바라는 것들을 확실히 믿을 경우 성령의 도움으로 삶속에서 그 실상이 증거로 경험된다는 이치입니다. 이것은 이미 양자역학에서 증명된 ‘관찰자 효과’로도 이해되는 부분입니다.  

그 믿음의 자리는 유교의 거경(居敬)자리이고, 오덕(五德, 仁義禮智信) 중에서 믿음(信)을 바탕으로 인 의 예 지의 성실성을 강조한 자리이고, 원 형 리 정 성(元亨利貞誠)의 誠(言+成=말이 이루어지는)자리입니다.   

불교에서는 믿음이 깊어지면(正念 사마타, 正定 위빠사나) 공적영지(空寂靈知)의 일심(一心) 즉 진여(眞如)의 자리에 접속되며, 초기불교의 수행체계(37보리분법)중 5근과 5력의 시작도 믿음(信根,信力) 입니다. 

고모님은 절대자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자신의 당면한 문제(일본에 간 신랑의 귀국)를 애타게 기원했지요. 같이 식사할 때나 일상생활에서 고모님의 기도나 믿음생활은 당시 믿음이 없었던 우리 가족들에겐 낯선 풍경이었습니다.

고모님의 기도와 믿음생활은 자신의 당면 문제로부터 이웃의 고통문제로 지경이 확장(야베스의 기도,역대상 4장 10절)된 삶이셨습니다. 헌신적인 고모의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성화(聖化 sanctification)의 삶 이었습니다.

유교의 궁리(窮理),역행(力行), 화엄경의 불교를 공부하는 방법의 요체인 신(信) 해(解) 행(行) 증(證)의 과정 중에서 해 행의 생활이셨습니다.

소천하기 수년 전, 고모님은 영화(榮化, glorification)의 삶을 사셨습니다. 누추한 초막이였지만 하나님이 항상 임재하는 영화로운 초막(장막)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이셨지요(초막절,장막절;유대인들의 종교력 ).

독자 여러분은 펑소 무엇을 믿고 의지하며 무엇을 위하여 살고 계시는지요?
나의 삶을 뒤 돌아보니, 세속적인 욕심의 허명(虛名)을 위해 많은 시간과 열정을 낭비하지 않았는지 반조(返照)해 봅니다.

‘...이름(名)을 불러 주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비로소 하나의 눈짓이 되어 꽃으로 되고 싶은...’ 

김춘수 시인(1922ㅡ2004)의 ‘꽃’이라는 싯구의 일부입니다. 고모님은 갓 결혼 후 일본으로 떠난 신랑이 불러주지 않아, 의미없는 하나의 몸짓에 불과했지만 어려운 이웃과 하나님이 불러 주셨을 때 비로소 의미 있는 눈짓이 되어, 무서리가 내리는 날에도 한송이 국화꽃이 되었습니다.

고모님! 그 국화꽃 향기에 걸맞은 이름을 다시 한번 불러 봅니다. 그 빛나는 이름을 부르니, 나에게로와서 꽃이됩니다. 나에게 믿음의 씨앗을 심어주신 고모님! 그 씨앗이 열매를 맺어 ‘나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나의 이름이 불리어지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나를 가두어 왔던 감옥(음식,男女의 식욕과 성욕,재물욕,권력욕, 합당하게 불리어 지기를 원하는 명예욕 등)으로부터 자유롭고자 부단히 노력해 보았지만 절대자에 의지하지 않고는 어렵다는 것을 겸손하게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20여년전 가을 어느 날! 도암 석천 마을 입구에서 나지막히 불렀던 그리운 이름을 다시 불러봅니다. 고모! 김남임 집사님! 그곳에서 평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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