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찾은 부산서 사투리 듣고 박물관 이름 짓게 됐다

창고를 만들고 그곳에 물건을 줄줄이 세워놓은 모습을 보고 한 지인이 ‘박물관 같다’라는 말을 했다. 이 말을 들은 나는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1997년 무렵에는 병영성 복원이 한참 진행되고 있었다. 지인의 말을 듣고 병영성이 복원되고 나면 관광객들의 방문이 이어질 것이고 그에 따라 병영에도 볼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관광객들에게 작은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수집품을 모아 박물관 형태로 만들어보자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나는 병영성 복원을 앞두고 볼거리를 준비한다는 마음에 여러 가지 민속품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물건들, 폐기처분하여 고물상에 넘어간 것들 등 눈에 띄는데로 민속품들을 수집했다.

이렇게 내가 다양한 물건들을 수집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지역에 퍼지면서 주위 지인들도 물건 수집에 참여하게 됐다. 지인들이 저마다 자신이 오래전 사용했던 것들을 나에게 가져다 주었던 것. 이렇게 해서 기증받은 물품은 관리대장을 만들어 관리하기 시작했다. 이때는 노트에 기록을 했으나 현재는 와보랑께박물관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관리하고 있다. 

이렇게 물건을 모으다보니 박물관의 이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박물관이름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당시 막내딸이 대학입학을 하던 시기였다. 이때 막내딸은 부산 해양대학교에 입학을 원해서 학교 원서를 구입하기 위해 부산을 찾게 됐다.

이때 부산의 명물인 자갈치 시장을 지나게 됐는데 그곳에서 상인들이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게 됐다. 이 말을 들은 막내딸이 부산 상인들의 사투리를 전라도식으로 바꿔 “와보랑께”로 박물관을 이름은 지어보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낸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본 나는 이름이 그럴듯 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창고 유리창에 ‘와보랑께’라고 적어놓았다. 바로 이것이 ‘와보랑께박물관’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름까지 붙인 후 나는 본격적으로 전시품들을 수집하기 위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가정형편이 넉넉해서 돈을 주고 구입할 수 없는 형편이었지만 박물관이라고 명칭을 붙인 이후에는 좋은 전시품을 구하기 위한 욕심이 생겨 여러 가지 물건들을 돈을 주고 구입하기 시작했다.

이러던 중 우연히 함평의 박현순이라는 사람을 알게 됐다. 이 사람은 함평에서 커다란 하우스에서 꽃과 관엽식물을 재배하고 있었는데 수익금을 모두 옛 물건을 수집하는데 투자해 하우스에 전시장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던 인물이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서로 의견을 교환하며 자주 교류도 하며 친하게 지내게 됐다. 이때 광주와 전라도에서 골동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만들어졌는데 이름이 ‘민고회’였다. 나도 박현순씨의 연결로 민고회에서 활동하게 됐다.

추후 박현순씨는 수집한 물품을 함평군에 매각했고 함평군에서는 폐교된 학교 건물을 매입해 전시관을 만들었다. 박현순씨의 아들이 이 곳 전시관에서 학예사로 근무하고 있고 이후에도 꾸준히 민속품을 수집하고 있다.

또 민고회에는 옛 물건을 취급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중 한명은 화순에서 농장을 운영하며 옛 물건을 수집하고 있는 사람과 한복집을 운영하는 사람, 식당과 농장을 운영하며 민속품을 좋아 하시는 사람 등 각계각층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었고 이 곳에서 정보를 얻었다.           <정리=오기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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