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이등병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견학하던중 월북한 뉴스가 나왔다. 이름이 트래비스 킹인 이 사람은 부대에서 폭행 사건을 일으켜 미국으로 호송될 예정이었다고 한다. 동향 의식인지는 몰라도, 월북하면 항상 떠오르는 사건이 있다. 강진사람의 월북에 대한 이야기다. 1991년 1월 28일의 사건이다. 

그날 일본 도쿄에서 청취된 북한관영 중앙통신에 짤막한 보도 하나가 나왔다. ‘28일 남한의 전남 강진군 출신 의료보험회사 직원 강대승(29)씨가 월북했다.

강씨는 남한사회가 완전한 미국의 식민지로서 빈부의 격차가 전보다 더 심해지고 있는데 환멸을 느껴 수년 동안 북한으로의 탈출 방법을 모색해 왔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주로 도쿄에서 청취된 북한 중앙통신을 통해 북한내 소식이 외부에 알려질 때다. 

강씨의 월북 사실은 강진사람들에게 충격이었다. 바로 이웃주민이, 그것도 가족까지 있는 사람이 북한으로 넘어간 사건이었다. 강진경찰서 정보과 형사들이 강씨가 살던 집을 수색하고 난리가 났다. 북한관련 책자나 불온유인물 같은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

강씨는 1987년 강진군의료보험조합에 입사했다. 보험료를 수금하는 일을 했다. 그 전에는 장흥교도소에서 교도관으로 근무했다. 지금은 보험료 수납을 청구서가 나가고 조합원이 은행에 돈을 입금하는 방법이지만 당시에는 각 지역별로 담당 수금사원이 있어서 현금을 주고 받았다.

수금한 건강보험료를 손댄 것으로 알려졌다. 월북하기 며칠전에는 신전면사무소에 들려 극빈자에게 나눠주는 쌀을 받아가기도 했다. 그러다가 강씨가 며칠 보이지 않았고, 느닷없이 월북소식이 전해진 것이었다. 가족들은 몇 년 후 강진을 떴다. 

그 뒤로 조용하다가 월북한지 8년째 되던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1999년 5월 30일 강씨가 평양방송에 출연했다. 방송은 당시 안기부에서 수신해 공개됐다. 방송에 나온 강씨는 자신의 고향이 전남 강진군이라고 밝히고 ‘̒의거 전 강진군 의료보험조합에서 근무했다’고 또박또박 말했다. 그는 북한에서 “농촌경리부문 일꾼(간부)으로 일하고 있다”고 근황을 소개했다.

그는 북한생활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강씨가 월북한지 32년이 지났다. 강씨는 북한에서 잘 살고 있을까. 그의 나이가 올해 61세로 환갑이 넘었다.    <주희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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