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로 마련한 공사현장 사무실, 박물관 시초가 됐다

문화활동과 병영과 하멜 자료수집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김태진 교수와 교류했고 김 교수의 하멜관계 책 발간에도 참여하기도 했다. 

이시기부터 병영에서 7년간 머물렀던 하멜 일행들의 이야기가 외국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더불어 강진에서도 병영성과 하멜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런 관심들은 현재 모개나무 거리에 병영성지 표지석건립 등 전라남도 지방문화재, 사적지 지정에 이어 병영성 복원공사로 이어졌다. 

이 시기에 병영성과 관련된 책 몇 권이 출간됐다. 이때 하멜 관계로 서울랜드에서 기획행사를 진행했는데 바로 네덜란드 하멜이 우리나라에 온 3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전시행사였다. 나는 이 전시회에도 찾아가 참여하는 영광을 얻기도 했다. 

또 강진군에서도 네덜란드 호루쿰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호루쿰시에서 개최되는 행사에 군청직원들이 방문하는 등 교류활동이 시작됐다.

이때 하멜기념사업이 시작되던 시기였는데 강진군에서는 사업과 관련된 사람들을 중심으로 방문단을 꾸렸다. 하멜기념관 설계자와 공사업체 관계자 등과 함께 나도 하멜 향토사학자 자격으로 참가하게 됐다.

이때 호루쿰시 박물관에서 미술전시회를 하고 있던 이화여대 조덕현 교수를 만나기도 했다. 조 교수는 네덜란드 핸리라는 이름의 교수와 병영 도룡마을에 있는 나의 집을 찾은 적이 있어 아는 사이였다. 이때 난생처음 나는 유럽여행을 한셈이다. 

이후 군에서 추진한 하멜 홈페이지 개설의 자문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고 현재 와보랑께박물관에 그동안 수집해놓은 하멜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들도 전시중이다.

이제 박물관을 짓게 된 시절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나는 병영면 도룡리 172번지에서 태어나 자랐다. 이때 집이 비좁아 가족들이 생활하는데 상당히 불편했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 집터의 토지를 마련하게 되면서 주택 신축을 하게 됐다. 이때 전남대학교 영문학과 김태진 교수에게 자문을 구했다. 이렇게 해서 지금 살고 있는 도룡리 596-1번지로 1996년 신축공사를 하게 됐다.

공사업자에게 주택 신축공사를 맡겼으나 기초공사 한 부분이 허물어지고 공사가 늦어지면서 계약을 파기하고 내가 직접 공사를 맡아서 진행하게 됐다. 그해 2월에 공사를 시작해 추석에 입주할 계획이었던 집이 12월 연말에서야 공사가 끝이나 이사를 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집을 짓고 나서보니 이제는 창고가 없어서 불편했다. 이때 도룡마을 앞에 있던 폐교된 옛 병영동초등학교에 송전철탑을 세우는 공사를 하는 사무소가 있었다. 이 곳에는 사무실과 창고가 폐교된 학교 운동장에 만들어져 있었는데 공사가 끝나서 철거를 앞두고 있었다.

나는 공사업자에게 부탁해 철거하는 건물을 구입할 수 있게 됐다. 건설사에서 아예 건물을 철거해 나의 집에 이전해주기로 계약을 했고 집 앞에 40여평 규모의 창고가 만들어졌다.

이렇게 창고를 지은후 예전에 살던 집에서 필요한 물건을 이 창고로 옮기기 시작했다. 창고 면적이 40여평으로 넓다보니 창고벽에 물건을 줄줄이 세워놓았는데 창고를 찾아온 한 사람이 나에게 박물관같다는 말을 들려주었다.

이때 이 주민이 나에게 들려준 이 말은 내가 와보랑께박물관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됐다. 이후 본격적으로 박물관 작업이 시작됐다. <정리=오기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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