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연구 활동하며 병영관련 자료 수집을 시작했다

나는 탐진향토문화연구회원으로서 마을사 조사를 하며 강진군 관내 각 읍면의 마을지를 출판하는데 작은 힘을 더했다. 

마을사 조사를 하면서 낮에는 학교에 출근해 근무를 하고 퇴근후에는 내가 담당한 마을을 찾아가 조사를 하는 강행군을 이어나갔다. 

어느 날은 저녁식사도 하지 못하고 시간이 없어서 빵과 우유 한 개로 해결해야만 했고 밤 1시가 넘어서야 조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때 운전을 해서 병영으로 오던중 졸음운전으로 사고가 날뻔한 적도 여러번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이다.

마을사 조사를 하면서 어떤 수당을 받는 것도 아니었지만 지역사회를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활동했다. 당시 탐진향토문화연구회 회원들은 이런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군내 여러 면의 마을조사를 성공적으로 끝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시 회원들은 관내 문화유적지 답사와 함께 발굴과 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매년 개최됐던 청자축제에 민속품 전시관을 운영하기도 했다. 

이 민속품 전시는 강진읍에서 장수당한약방을 운영하고 있는 윤창근 회원의 물심양면 헌신적인 도움이 있었기에 운영될 수 있었다.

회원들의 노력과 재정 부담을 감수하고 열심히 수집한 물품들을 모아 강진군에 인수인계를 했다. 하지만 인수인계를 끝내고 이듬해에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면서 전시관이 침수되고 관리부실까지 이어지면서 지금까지 회원들이 수집한 물품들은 모두 손상되어 버렸다.

나중에 이 전시관은 철거 후 그 자리에 정각을 건립한다는 계획이 수립되었다. 이후 철거 직전 필자는 군의 연락을 받고 돌 제품 등 훼손이 심하지 않는 물품들을 모아 나의 집으로 수습해서 가지고 올 수 있었고 지금은 와보랑께박물관에 전시품으로 전시되고 있다. 

또 나는 강진문화원회 회원으로 활동하다가 이사로 선임돼 병영을 알리는데 신경을 쏟기도 하였다. 

이사로 약 10여년정도 활동했다. 나는 문화원 이사로 활동하면서 매년 강진문화원에서 발행하는 문화원지에 병영을 소개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내가 병영을 대표하는 이사로서 할 수 있는 것은 강진군민과 많은 사람들에게 병영을 알리고 홍보하는 일뿐이라고 생각했기에 열심히 활동했다.

이렇게 다양한 문화 활동을 하면서 병영과 하멜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당시 전남농업박물관장과 전남대학교 김태진 교수 등 문화와 관련된 인물들과 교류를 할 수 있었다. 

이 사람들이 찾아와 강진에 필요한 자료를 묻기도 했고 내가 보유하고 있는 자료는 제공해주는 등 교류활동도 할 수 있었다. 특히 나는 하멜표류기 책을 구하기 위해 광주에 갈때마다 책방과 학교도서관을 찾아다녔다. 이렇게 5-6년 정도를 책을 구하기 위해 돌아다녔지만 구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교육청에서 폐지로 팔려고 묶어놓은 헌책꾸러미를 발견했다. 나는 유심히 책들을 살펴보다가 내가 그토록 찾고 싶었던 하멜표류기 책을 발견했다. 이때 기쁨은 말할수가 없었다. 

이때 내가 발견한 하멜표류기 책은 탐진향토문화연구회원들과 함께 보면서 하멜이 조선시대에 병영에 머물렀다는 사실에 대해 공부를 하고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됐다. 난 이후로도 병영과 하멜에 관한 자료 수집 활동을 계속했고 이때 수집한 물건들은 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정리=오기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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