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때마다 아버지의 사랑과 따뜻한 마음 느껴져요”

학원개업때 아버지가 작품선물
홍익대 미대 진학할때 반대, 지금은 가장 큰 후원자

2010년 고향 강진으로 귀향
학원보다는 화가의 꿈 선택, 작천 하남마을서 작품활동

글씨볼때면 아버지의 응원 생각 
작천에 작업장 만들자마자 서예작품부터 벽면에 부착

 

김충호 회장이 애장품인 아버지의 서예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김충호 회장이 애장품인 아버지의 서예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군동면 화방마을에서 작천면 방면으로 길을 잡고 한참 달리다보면 도로변 하남마을이 나타난다. 도로변 바로 옆에 회관이 있고 그 옆에는 오래된 양곡창고가 하나 있다. 이 곳은 김충호(61) 강진미술협회장이 작품활동을 하는 공간이다. 

김 회장이 작업실에 들어설때마다 입구에서 바라보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心淸事達(심청사달)이라는 서예작품인데 소중하게 보관하기 위해 유리액자로 만들어 작업실 출입문 옆에 걸어놓았다. 바로 오늘의 주인공인 애장품이 바로 이 서예작품이다.

이 작품은 김 회장이 서울을 떠나 고향인 강진으로 내려오면서 가장 먼저 챙겨서 집안에 걸어놓을 정도로 소중한 물건이다. 이 서예작품은 김 회장의 아버지인 김형순(92)씨가 선물한 것이다.

김 회장의 부친 형순씨가 직접 쓴 서예작품으로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김 회장의 부친 형순씨가 직접 쓴 서예작품으로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이 서예작품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김 회장의 학창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김 회장은 강진읍 평동마을 출신으로 중앙초등학교와 강진중학교를 거쳐 광주 숭일고를 졸업하고 홍익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그가 화가의 꿈을 꾸며 미대진학을 하게 된 것은 중학교시절 양규철 교사덕분이었다. 항상 수업이 끝나고 나면 김 회장은 선생님과 함께 도암이나 남포 등 야외로 나가 풍경화를 그리곤 했다.

이때 양 선생은 같은 곳에서 그린 풍경화가 아이들마다 다르게 표현하는 것을 보고 직접 그림에 대해 설명하게 하는 교육을 했다. 이때부터 그림에 흥미를 느끼게 됐고 예고 진학을 꿈꾸었다.

하지만 이때만 하더라도 화가는 밥을 굶는다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에 아버지의 강한 반대에 부딪쳤다. 아버지의 반대로 김 회장은 예고를 포기하고 인문계 고등학교를 진학하는 대신 미술부에 들어가 공부를 계속 하며 화가의 꿈을 키워나갔다.

이후 고등학교 졸업할 시기가 됐고 대학 진학을 결정해야 했는데 미술분야에서 명성이 높은 홍익대를 진학하고자 했다. 아버지는 역시 반대했지만 입학금만 지원해달라고 요청하며 설득한 끝에 겨우 입학을 할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대학생활이 시작됐다. 김 회장의 원래 꿈은 교수였다. 하지만 대학교에서 지금 부인인 조미정(64)씨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1989년 4월 결혼을 하게 됐다.

결혼후 교수의 꿈대신 부인 미정씨와 함께 홍익대 근처에서 미대진학을 목표로 하는 고등학생들을 지도하는 학원을 운영했다. 이 곳에서 아이들과 초등학교 교사 대상 미술을 지도했고 학교에서 방과후강사로도 활동했다. 이때 나름대로 상당한 성과도 거둬 각 학교에서도 강의 요청이 쇄도하는 등 나름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이렇게 40대말이 된 2000년대 중반무렵부터 공허함을 느끼게 됐다. 자신과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은 상당수가 전업화가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꿈이 화가였다는 사실을 느끼게 됐던 것이다. 늦은 나이지만 자신의 꿈을 찾고 싶다는 고민을 하게 됐고 결국 가족들과 상의한 끝에 2010년 고향인 강진으로 내려오게 됐다.

전업화가로 활동하기 위해 서울에서 기반을 버리고 강진으로 내려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고민이었지만 이때 결심을 굳힐 수 있도록 해주었던 것이 바로 오늘의 애장품인 心淸事達(심청사달) 서예작품이었다.

김 회장의 아버지 김형순씨의 모습.
김 회장의 아버지 김형순씨의 모습.

이 작품은 김 회장의 부친 형순씨가 1993년 봄에 아들이 입시학원을 차린다는 소식을 듣고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정성들여 글씨를 써서 액자로 만들어 선물을 한 것이었다. 이 글귀에는 ‘마음을 깨끗하게 하면 일이 순조롭게 잘 진행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서예작품속에는 아버지의 아들 사랑이 담겨있다. 사실 형순씨는 김 회장이 화가의 길을 걷고 미대 진학을 할때부터 반대를 해왔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입시학원을 운영하고 고향인 강진으로 내려가 전업화가로서 길을 걷고 있는 현재는 가장 열렬한 팬이 됐다.

형순씨는 거의 매일 아들 김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작품활동을 잘 하고 있는지 오늘은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를 물으며 화가로서 활동을 지원하고 격려하고 있다. 이런 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있는 물건이 바로 心淸事達(심청사달)이라는 서예작품인 것이다.

이런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있기에 김 회장은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애장품이자 보물1호로 여기고 서울에서 강진으로 이사를 오면서 집에 가장 먼저 걸어두었다. 또 자신의 작업실을 작천 하남마을에 구하고 입주할때에도 출입문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걸어놓았고 그림을 그릴때마다 아버지의 말씀을 생각하고 있다.

김 회장의 부친 형순씨는 이 작품을 선물하기 위해 신문지에 수십번 글씨를 연습한 끝에 완성한 작품이었다. 이렇게 정성들여 쓴 것은 아들의 일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과 미대 진학을 반대했던 것에 대한 미안함 등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예전에는 화가의 길을 가는 것에 대해 반대하셨지만 지금은 가장 큰 지원군이자 열렬한 팬이 바로 아버지다”며 “아버지의 사랑이 듬뿍 담겨있는 이 작품은 내가 죽을때까지 소중하게 간직할 보물이다”고 말했다./오기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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