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파산 정상 아래에 큰 마을이 섰다

 

비파산 정상 아래쪽에 있다. 마을 가운데로 파산천이 흐른다. 천을 중심으로 유난히 넓어 보이는 마을 터가 인상적이다. 원래 마을 이름이 ‘문터리’였으나 100여년 전 ‘새터’라 하여 신리로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문터리에서 50여년을 살다가 세찬으로 황소를 잡았는데 그 고기를 먹고 10여명이 사망해 현재의 새로운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마을뒤로 비파산 정상이 보인다.
마을뒤로 비파산 정상이 보인다.
마을 안쪽 집에 장독대가 보인다.
마을 안쪽 집에 장독대가 보인다.

 

마을은 풍수지리적으로 북혈룡터라고 한다. 강진읍 뒷산 우두봉의 용 혈맥이 동쪽인 신리마을 뒤편에 떨어져 엎드려 있는 형국이라 한다. 지금도 파산천 주변을 파헤치면 용의 알같이 생긴 바위들이 나온다고 한다.

마을입구에 잘생긴 팽나무가 있다. 강진의 나무 전문가들은 군동 신리마을의 팽나무를 강진에서 가장 좋은 팽나무로 친다. 

나이가 오래된데다 수고가 낮아 모양이 아름다우며, 수피가 품위있다는 평가다. 신리마을 팽나무는 수령이 360여년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1982년 보호수로 지정됐다. 이렇게 좋은 나무가 마을입구에 있으면 그 마을이 달리 보인다.

마을 북쪽으로 가는 길이다.
마을 북쪽으로 가는 길이다.
마을 입구에 수백년된 팽나무가 있다.
마을 입구에 수백년된 팽나무가 있다.

 

마을에는 한골샘물이라는 약수가 있었다. 비파산과 우두봉쪽에서 물이 흘러드는 곳이라 전통적으로 신리 마을은 물이 풍족했다. 130여년전 큰 흉년이 닥쳤을 때 주변 마을 사람들이 한골샘물을 마시고 허기를 면했다고 한다.
 

마을에 다리가 두개 있다.
마을에 다리가 두개 있다.

 

1918년 무오년에 독감이 심했을 때는 이 샘물을 떠다가 술을 만들어 먹고 독감을 물리치기도 했다. 이곳에 사람들이 하도 많이 모여들어 ‘남대문거리’라는 애칭이 생기기도 했다./주희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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