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희/ 강진군 일자리경제팀장

나의 고향은 병영이다. 어릴 적 병영 5일장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아버지 손을 잡고 시장에 들어서면 번데기 솥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을 타고 번데기 익는 냄새가 날아와 내 코를 유혹했다.

신문지로 나팔을 만들어 번데기를 가득 붓고 그 위에 흰 소금을 한 주먹 멋지게 뿌려대는 장사 아저씨의 폼 나는 모습을 보며 입맛을 다시는 순간, 바로 옆에서 터지는 뻥소리에 놀라 돌아보면 뻥튀기 기계 앞에 코흘리개 친구들이 참새 마냥 줄줄이 앉아 튀밥 하나라도 얻어 먹어보려 귀를 가린 채 서로 바라봤다.

시장에는 옷과 양말, 고기와 생선, 농기구, 쌀, 콩, 과일, 파리약, 참빗 등 없는 것이 없었다. 어린 나는 신기한 것들에 한 눈 팔다 아버지가 나를 찾아 헤맨 적도 있었다. 그렇게 병영장은 물건으로 사람으로 북적거렸다.

세월이 흐르면서 병영면에 사는 사람들도 줄고 시장을 찾는 사람도 줄면서 서너 개 점포 외에는 많은 점포들이 비어 있다. 현재 농촌의 한 단면이다. 

인구 문제는 경제의 문제이며 경제 문제는 생사의 문제다. 그래서 절박하다. 절박함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을 부른다. 그런 절박함으로 몸부림치는 곳이 있다. 그곳이 바로 병영면이다. 한적해진 면 소재지에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사람들의 지갑을 열게 함으로써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뤄보기 위해 치열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이름하여 병영 불금불파(불타는 금요일엔 불고기 파티 어때?)이다.

병영은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나오는 유명한 연탄불고기집과 함께 주변에 늘어선 불고기 백반집에 손님들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이러한 ‘맛 자원’을 관광으로 연결시켜 외부 유동 인구를 늘리고 우리 지역에서 소비하도록 유도하겠다는 전략이다.  

군은 우선 병영시장 일대를 재정비했다. 시장 주변 빈집을 철거, 정비하고 시장 내 빈 장옥들을 리모델링해 불고기를 만드는 식당과 판매점을 입점시켰다. 닭전이 있던 옛 광장 자리에 무대를 만들고 공간을 넓히고 물길 쉼터를 만들었다. 병마절도사의 자존심이라는 조산 앞에는 대형 버스와 승용차들이 200대 정도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도 조성했다.   

지난 5월 26일 개장식부터 지금까지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총 8일 간 문을 연 행사장에는 관광객 6,000여 명이 다녀갔으며 매출액 1억여 원이라는 성과를 올렸다. 폭발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적은 것도 아니다. 첫 시도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아직까지는 성공적이다. 관광객 수와 매출이라는 객관적인 수치도 중요하겠지만 수치로 드러나지 않는 간접 효과와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도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멈춰 선 것만 같던 병영성 복원지 옆 하멜전시관 뒤뜰에는 금요일 밤이면 낭만적인 분위기를 담은 감성 텐트촌까지 생겼다. 20개의 텐트는 매회 평균 200팀이 신청을 한다. 또 하나의 병영 관광 콘텐츠가 되고 있다. 

행사장 개장 전 병영면민을 비롯한 인근 주민들은 사실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이 작은 시골에 과연 사람들이 올까? 그동안 침체를 거듭했던 지역 분위기만큼 주민들의 희망도 희미해져 있었기에 쉽게 기대를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북적이는 사람들을 보며 지역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서일까? 구경삼아 찾아온 행사장에서 북적거리는 사람들을 보며 병영의 옛 모습을 상상하며 병영 면민들은 이제 기대감까지 갖는다. 마량 놀토수산시장이 유명세를 타면서 손님이 넘쳐 인근 상가에까지 파급되었던 것처럼 병영에서도 또 한 번의 작은 면의 기적을 기대하는 것이다. 

또 한가지 주목할 만한 것이 있다. 그것은 병영의 발전 가능성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찾아오니 이제 군에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오래 병영에 머물도록 하는 방법을 찾아 새로운 구상을 시작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된다는 속담이 있다. 병영의 숨은 자원들을 연결해 병영소재지 일대를 관광지로 만들어 가는 구상이다. 병영성, 하멜촌, 한골목, 병영천을 연결하는 관광코스로 개발해서 불금불파에 오는 관광객이 더 오래 병영에 머물며 돈을 쓰게 하자는 것이다. 불금불파는 관광객이 올 수 있는 기폭제가 되어 병영관광 투어로 이어질 것이다.

한골목 돌담길을 새롭게 정비하고 한골목길 가옥 중 개방 의사가 있는 분들의 집에 예쁜 정원을 꾸미고 정기적으로 관리를 해 주거나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시는 집에 그대로 묻어 있는 옛 시골 사람들의 생활 모습과 자연스러운 스토리를 담은 개방 가옥들을 개발하고, 자전거를 타고 한골목을 투어하는 관광 코스를 만들어 갈 계획이다.

한골목과 적벽청류, 은행나무와 비자나무, 병영성과 하멜촌으로 이어지는 둘레길은 새로운 감성과 재미를 빚어내는 소재가 될 수 있다. 이것이 병영의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이다.

작은 고을 강진 그 속에 더 작은 병영이 지금 새로운 기대로 꿈틀거리고 있다. 이것이 농촌의 재생이다. 쓰러져가는 농촌에 새 생명을 불어넣으려는 애타는 시도가 결실을 맺어가고 있다.

물론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보완해야 할 점도 많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시도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 도전에 긍정적 시그널이 보인다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민들의 마음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작은 면의 기적, 그것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병영면 시장 일대를 탈바꿈하는데 함께 열정을 쏟아준 인구정책과, 건설과, 도시재생센터, 문화관광실, 병영면 직원들과 행사에 적극 협력해준 모든 직원들과 병영면 지역주민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2023년 상반기 불금불파 행사는 7월 1일이면 마무리되지만, 하반기 9월부터 10월까지 실시되는 불금불파 행사는 지금까지의 발생된 문제점 등을 보완해 추진할 계획이다. 병영이 일본의 유후인처럼 생태관광지로, 지역소멸의 성공적인 모델로 발전하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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