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국/ 전 순천향대 교수(작천 이마마을 출신)

할머니! 
오늘처럼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고 싶습니다.(푸르른날, 1956년 서정주)

40년 전 오늘은 나의 고향인 작천 이마마을 동구 밖에 할머니의 덕행을 기리는 의행비가 세워진 뜻 깊은 날입니다. 의행비는 강진유림에서 1983년 6월1일 건립했습니다.

그 자리는 저에게 그리고 저희 집안에 참 의미가 깊은 곳입니다.

저의 아버지께서 17세에 공자님 제자중, 효孝의 대명사인 증자(BC505-435)를 꿈에 보았던 그 곳, 어린시절 늦은 밤, 할머님께서 밭일 마치시고 보채는 저의 손을 잡고, 반짝거리는 수많은 별들을 보았던 그 곳,  여름과 겨울방학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저를 아쉬움으로 떠나보내셨던 그 곳. 방황 하던 젊은 시절, 귀향하는 손자를 늦게까지 기다리시던 그 곳. 그 곳에 지난 6월 1일 의행비 비문 해설과 둘레석으로 새롭게 단장하였습니다.
 
마음이 산란할 때마다 고향에 계신 할머니와 함께했던 추억깊은 그 곳...
그때마다 마음의 위로와 평안을 되찾곤 했지요.

그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할머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이었다는 것을.
조건없는 사랑의 자리. 그 자리는 모든 이들을 살리는 자리라는 것을 한 집안의 가장이 되어, 자식을 낳고 손주를 보면서 어렴풋이 알 것 같습니다.

비록 배움으로 터득한 것은 아니지만, 할머니는 유교와 불교, 기독교의 핵심 가르침(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실천하시는, 단성(丹誠; 몸과 마음에서 우러나는 뜨거운 정성(精誠))의 삶을 사셨던 겁니다.

할머니는 매일 이른 새벽, 마을어귀 우물에서 물을 길어 조왕신(부엌신)께 간절히 기도함으로 하루를 시작하셨지요. 할머니는 특정한 종교가 없으셨습니다. 아니 모르셨습니다.

그러한 할머니의 간절한 기도는 하나님 사랑의 자리에 거(居)하게 하는 행위였습니다(유교:거경居敬,궁리窮理의 자리, 불교;정념正念, 정정正定,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의 자리, 기독교:성령이 거居하는 자리).

간절한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신 할머니의 평상의 삶은 이웃사랑의 실천과정이셨습니다(유교;역행力行, 불교;정어正語,정업正業,정명正命,정정진正精進, 기독교; 이웃사랑). 세아들 교육에 성誠을 다하셨고, 이웃에게는 우애롭고, 화목하게 생활하셔서 여중군자라고 칭찬을 받으셨지요.

배움 부족하고 가냘픈 한 여인의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단성(丹誠)의삶! 이러한 삶을 다음 세대가 본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인생을 먼저 살고 있는 우리들의 책임과 의무가 아닐까요? 종교에 관계없이 누구나 유교,불교,기독교에서 추구하는 삶을 훌륭히 영위하기 위하여, 그 시작은 자신을 깊숙히 통찰할 수 있는 명상과 묵상의 기회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경북 영덕군에는 2017년 삼성에서 1천억원을 투자해 세운 훌륭한 명상수련원이 있고  경북 문경시에도 명상, 요가, 힐링센터가 있습니다. 이 힐링센터는 2017년 LG에서 한 초등학교 폐교부지 임차해 세웠습니다. 

강진에도 하드웨어(hardware)와 소프트웨어(software)뿐아니라 마인드웨어(mindware, 인간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것들)까지도 갖추어진 탈(脫) 종교젹 과학적 명상(묵상)을 훈련시킬 수 있는 명소(名所)가 위치하여, 자라나는 미래세대에 공헌하였으면 합니다.

한 송이 국화꽃의 향기가 되어(국화옆에서, 1947, 서정주) 동구밖에 의행비로 서 계신 할머니! 그 향기나는 삶을 위해 소쩍새가 그렇게 울고 천둥이 먹구름속에서 또 그렇게 울고, 간밤엔 무서리가 내리는 수많은 날들을 묵묵히 살아내신 할머니!

오늘밤은 할머니를 그리워하며, 잠이 오지않는 불면의 밤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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