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들로 둘러 쌓여 아늑하다

 

마을에서 가장 오래 산 성씨는 풍양조씨로 알려져 있다. 몇집을 제외하면 지금도 풍양조씨 자자일촌일 정도로 조씨들이 많이 산다. 호남영명학교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마을입구에는 풍양조시 쌍효자문이 보인다.

1868년에 세운 것으로 어려서부터 부모를 공경하고 양친이 돌아가신 후로도 3년 동안 고기와 술을 먹지 않은 형제의 뜻을 알리기 위해 세운 기념각이다. 
 

마을에 옛 골목길이 많다.
마을에 옛 골목길이 많다.
마을의 남쪽이다.
마을의 남쪽이다.

 

쌍효자문 바로 곁에는 ‘우신정’이라는 고풍스러운 마을 정자가 있다. 이 정자에는 주변의 경관을 옮은 9건의 현판이 보존돼 있다. 이밖에도 신안마을에는 다수의 고문서들이 전해져와 마을의 관록을 보여주고 있다. 

이 마을 출신중에 유명한 분이 고 조경연 중령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수상 항공기를 제작하고 해군 초대 항공대장을 지낸 인물이다. 조 중령을 기념하는 건물이 경북 포항의 해군 시설에 지금도 있다.
 

마을 남쪽에 있는 쌍효자문이다.
마을 남쪽에 있는 쌍효자문이다.
마을 안쪽의 골목이다.
마을 안쪽의 골목이다.

 

조 중령은 강진 공립보통학교(현 중앙초등)를 마치고 지난 50년 함정장교 중위로 임관했다. 조 중령은 최초로 파손된 미군항공기를 개조해 수상비행정 해취호를 처음 만들고 순수 국내기술로 서해호를 만드는등 수상항공기 4대와 육상항공기 4대를 제작했다.

이 공로로 조 중령은 은성 무공훈장등 4차례의 훈장을 받았고 서해호는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명명했다.

마을 북쪽에서 남쪽을 바라본 모습이다.
마을 북쪽에서 남쪽을 바라본 모습이다.
마을의 북쪽 모습이다.
마을의 북쪽 모습이다.

 

지난 58년 초대 항공대장으로 취임한 조 중령은 미국 군사고문단의 압력으로 함대 항공대가 해체되자 44세에 전역해 남은 여생을 고향에서 보내던중 지난 91년 타계했다.

주민들은 마을 뒷산 봉우리를 디딜방아형국이라고 한다. 봉우리에서 양쪽으로 흘러내리는 두 산맥 줄기가 방아를 찧을 때 양쪽에서 발로 딛는 모양이라 마을 가운데에서 현 앞도로까지 어느 누구도 집을 짓지 못하게 했다.

지금은 집들을 많이 지었지만, 마을 나름대로 명당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마을이라 할 수 있다./주희춘 기자

저작권자 © 강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