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추억과 가르침이 사회에 기여하는 큰 힘이 됐죠”

‘성실한 실천’이 평생의 신념
농부셨던 아버님이 신념의 뿌리
학창 시설 운동 중 크게 다쳐 방황
부모님과 학교친구들의 배려로 극복
역사유적과 천혜의 자연환경 살리면
강진이 전국 명소로 자리매길 할 것
꽃은 따뜻한 봄에만 피는 게 아냐
시련 이겨내면 겨울 동백꽃처럼 활짝


최현만은 전남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증권회사에 들어갔다. 낯선 업종, 치열한 시장에서 그의 생존 방법은 ‘성실한 실천’이었다. 그는 매일 새벽 5시에 출근해 보고서를 만들고 고객들을 찾아다녔다. 짧은 기간에 상위 영업사원으로 뛰어올랐다.

서초지점장 시절에 사내 영업실적 7위였던 서초지점을 2년여 만에 사내 2위, 전국 증권사 15위 점포로 올려놓았다. 1997년 미래에셋 창업에 동참했다.

당시 창업멤버는 불과 8명이었다. 최 회장은 승승장구했다. 오늘이 있기까지 농사 지으시는 아버님으로 부터 채득한 ‘성실한 실천’이 큰 자산이 됐다.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우선 고향 분들과 강진일보 독자 여러분께  인사말씀을 해 주십시요.
▷안녕하십니까! 존경하고 사랑하는 강진군민과 강진일보 독자 여러분! 미래에셋증권 회장 최현만입니다. 저는 전남 강진의 외진 농촌마을에서 8남매의 막내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근농이셨던 아버님을 보며 ‘성실한 실천’을 평생의 신념으로 삼아왔습니다. 성실한 구성원이 모인 조직과 사회는 어떠한 변화든 이루어 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 강진 또한 활력 넘치는 군이 되기를 바랍니다

▶요즘 경제가 많이 어렵습니다. 서민들의 이자부담이 늘어나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언제쯤 경제가 좋아 질련지요.
▷최근 국내 경기도 안 좋고, 물가와 금리가 너무 올라서 많이 힘든 상황입니다. 우선 경기는 하반기에는 수출이 좀 나아지면서 점차 회복될 걸로 보입니다. 물가와 금리는 빠르면 연말 아니면 내년 상반기부터는 점차 떨어질 것 같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서민들의 꿈은 돈을 버는 것입니다. 어떤 곳에, 어떤 방법으로  투자해야 돈을 벌수 있습니까. 좋은 비법이 있으시면 고향분들에게 살짝 귀뜸 해주십시요.
▷코로나19 극복과정에서의 재정 통화정책과 공급망 교란,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유발된 인플레를 잡기 위해 각국이 통화 긴축 정책을 펼치면서 주식, 환율, 금리 등이 급변하며 투자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1980년에는 저물가, 저금리, 자산 상승의 조건을 갖췄으나 2008년 금융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2020년대 들어서는 신냉전, 블록 경제화, 미국의 헤게모니 재강화, 노동력 부족 등의 구조적 변화를 보이고 있습니다. 투자자들은 초우량 핵심 자산을 가지되, 치명적인 실패가 없도록 위험관리를 해야하고, 밸런스를 잃지 않도록 자산 배분을 적절히 해야 합니다.

▶대학에서는 정치외교학을 전공 하셨는데요. 학창시절로 돌아가신다면 어떤일을 하실까요?
▷학창시절 문과를 전공했었는데 다시 돌아간다면 이공계를 경험해보고 싶습니다. 세상을 이끌어가는 것은 과학과 기술인데 돈 버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펀더멘탈 즉, 과학(원천기술)의 중요성을 경영하면서 느꼈기에 하는 말입니다. 세상을 바라볼 때 앞을 내다보면서 어려운 일들을 하나씩 극복해 나가면 저절로 균형된 시각을 갖게 됩니다. 균형된 시각을 바탕으로 창업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하다 보면 더욱더 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래에셋 글로벌 투자은행 도약 목표

▶미래에셋증권 대표이사 회장까지 오르셨습니다. 소회와 앞으로의 목표를 밝혀주신다면?
▷1997년 미래에셋자산운용 대표이사, 1999년 벤처캐피탈 대표이사를 거쳐 같은 해 12월 출범한 미래에셋증권 초대 CEO로 12년 역임했고, 2012년 미래에셋생명 수석부회장을 거쳐 현재 미래에셋증권 대표이사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미래에셋은 창업부터 지금까지 25년이 지났지만 미래에셋은 항상 그래왔듯이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즉 발전은 도전해가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지난 25년의 소회를 밝히기엔 아직도 갈 길이 멀고, 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미래에셋증권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세계 유수의 투자은행들과 경쟁할 수 있도록 아시아 대표 글로벌 투자은행으로 도약하겠습니다.

 

 

어릴적 어려워도 나눠먹던 기억 생생

▶회장님은 고향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미래애셋증권 대표이사 회장에 오르시기까지 고향 강진은 어떤 의미가 있었습니까.
▷저는 강진의 아들로 태어나 근농이셨던 아버님을 보며 ‘성실한 실천’을 평생의 신념으로 삼아왔습니다. 그리고 가난하고 배고팠던 어린 시절, 끼니 때가 되면 이웃과 먹을 거리를 나눠 먹곤 했습니다. 남루해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정겹던 기억이 오래 남아 있습니다. 기업의 경영자로서 고객과 사회에 기여하고 나눔을 실천하는 일에 언제나 진심으로 임할 수 있었던 근간에는 고향에서의 추억과 가르침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린시절과 학창시절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입니까. 인생에 가장 영향을 미친 사람은 누구입니까.
▷운동을 좋아했던 저는 크게 다쳐 결국 건강을 해쳐서 고교 시절 1년 반 정도 휴학했습니다. 때마침 5·18 광주민주화운동까지 겹치면서 대학진학 시기를 놓쳐서 방황하기도 했습니다. 이 힘든 시절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부모님과 학교 친구들의 배려였습니다. 또한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나의 길을 인도해주는 하느님의 사랑을 잊지 않고 기도하며 실천으로 보답하려는 생각입니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 해야

▶고향에 오시면 많은 변화를 느끼실 것입니다. 고향에서 여러분들이 열심히 하고 계십니다만, 고향이 좀 더 발전하려면 어떤 분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하는 부분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 강진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 실학을 집대성하신 유서 깊은 곳입니다. 우리 강진군민 모두 힘을 합쳐 농·어업 경쟁력을 키우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여, 강진이 더욱 젊고 활력이 넘치는 군이 되길 기원합니다.

▶강진이 발전하려면 기업의 투자를 유치해야 합니다. 미래에셋이 큰 투자도 하는 회사인데 고향 강진에 투자할 계획같은 것은 어떠신지요. 강진이 기업의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려면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합니까.
▷오랫동안 회사를 경영하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나라, 우리 아이들과 또 그다음 세대들이 살아갈 우리나라를 위해 남해안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강진의 역사유적과 천혜의 자연환경을 알리는데 더욱 힘써 우리 강진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명소로 자리매김 하길 기원합니다.

좋은 습관의 노예가 되라

▶고향의 후배들에게 격려의 말씀 해주십시오
증권사에 취직한 후 증권의 문외한이던 제가 살아남으려면 이를 악물고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하면서 하나씩 배웠습니다. 그러면서 증권분석사를 공부해 국제 금융의 중심인 뉴욕 월가 연수까지 가게 됐습니다. 꽃은 따뜻한 봄이나 여름에만 피는 게 아닙니다. 추운 겨울에도 동백꽃은 핍니다. 모진 시련과 고통을 이겨내면 동백꽃과 같은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을 후배들에게 하고 싶습니다. 좋은 습관들을 하나하나 몸에 익혀 좋은 습관의 노예가 된다면 성공은 저절로 따라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대담=오기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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