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교와 고향 발전이 곧 나의 기쁨이지요”

다양한 기부 활동으로 고향사랑 실천
귀금속 업체 운영하며 성공한 기업가
군향우회와 강진고 동문회 활동 매진

여상진 재경강진군향우회 청년회장이 운영중인 사무실의 모습이다.
여상진 재경강진군향우회 청년회장이 운영중인 사무실의 모습이다.

지역출신으로 실패를 극복하고 성공한 사업가로 활동하면서 고향을 위해 누구보다 발벗고 나서는 출향인이 있어 화제다. 화제의 주인공은 여상진(57) 재경강진군향우회 청년회장이다.

여 회장은 바닷가가 아름다운 신전면 사초리에서 태어났다. 신전초등학교와 도암중학교를  거쳐 강진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가정형편상 대학진학은 하지 못하고 곧바로 생계에 뛰어들었다.

고등학교 졸업후 1986년 무렵 여 회장은 고향을 뒤로하고 서울로 향했다. 바로 돈을 벌기 위해서였는데 이때 그가 선택했던 일은 바로 보석을 취급하는 일이었다.

어린 나이에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과감하게 도전장을 내밀었던 것. 그가 하는 일은 주로 호주나 아프리카 등에서 비취나 토파즈 등 보석의 원석을 수입해서 가공 작업을 통해 국내 귀금속 전문점에 판매를 하는 일이었다.

● 고교 졸업후 귀금속 사업 시작
이 일은 복권을 긁는 것과 같았다. 원석을 비싸게 수입해와 가공을 거쳐 국내 상점에 판매하는 것인데 문제는 구입해온 원석을 가공하기 전까지 그 품질을 정확히 진단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러다보니 비싸게 원석을 구입해 가공했지만 품질이 크게 떨어져 팔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했다. 그러다보니 운영해나가기 쉽지 않았고 결국 실패했다.

지난해 고향 신전면에 기금을 기탁하고 있다.
지난해 고향 신전면에 기금을 기탁하고 있다.

 

이후 그가 선택한 사업은 귀금속 사업이었다. 여 회장은 ‘한국의 오늘의 금시세’라는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금과 관련된 사업을 하기 시작했다. 이 사업은 IMF를 겪으면서 금모으기 운동이 전국적인 열풍을 타고 확산될 때 적지 않게 부각이 됐다.

이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서울거래소’로 전환돼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여 회장은 금 가공 제품을 전국의 매장에 판매를 하며 성공적으로 사업을 이끌어 가고 있다.

● 재경향우회와 동문회에 기금 기탁 
사업이 안정되면서 여 회장은 고향을 위한 활동에 매진하게 됐다. 그는 약 10여년 전부터 강진고 동문회 활동을 시작했으며 이후에는 재경향우회 활동도 병행하면서 바쁘게 지내고 있다.

특히 민병조 전 재경강진군향우회장의 적극적인 권유를 받고 재경향우회 활동을 시작했으며 이후 강윤성 회장으로부터 청년회장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지금까지 재경향우회의 청년회장을 맡아 임원진과 함께 고향사랑을 실천해오고 있다.

그가 지금까지 향우회 활동을 하면서 여러 가지 일들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장학사업이었다. 강윤성 회장 시절 여 회장은 장학제도가 만들어지는 데 기여했다. 여 회장도 장학회에 기금을 기탁하며 향우자녀중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성적이 우수한 인재들을 위해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여 회장이 지난 1일 군민의날 고향사랑 기부금을 전달했다.
여 회장이 지난 1일 군민의날 고향사랑 기부금을 전달했다.

 

이뿐만 아니라 재경강진고총동문회장을 맡게 되면서 강진고 발전을 위한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여 회장은 동문회 차원의 장학회 설립을 준비중이고 강진고 역사관도 학교내에 만들기 위해 준비중이다.

최근에는 강진고 동문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대규모 행사를 준비중이다. 오는 20일 서울 양천구 해마루축구장에서 재경강진고 동문들과 재경강진군향우회 회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화합을 다지는 한마음 체육대회가 바로 그것이다. 이날 행사를 위해 여 회장은 솔선수범하는 차원에서 자신의 사비로 500만원을 행사비용으로 기탁하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지난 1일에는 강진군민의 날을 맞아 고향사랑기부금으로 500만원을 기탁했고 지난해에는 고향 신전면에 어려운 고향 주민들을 위해 써달라며 100만원을 전달하기도 했고 1월에는 마스크 5천장을 전달했다.

여 회장은 “고향을 떠나 살고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고향을 그리워한다”며 “앞으로도 항상 고향 강진 발전을 위해 여러 가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울 생각이다”고 말했다.                                    /오기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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