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8일 장흥에서 열린 ‘보림문화제 및 군민의 날’에서는 의미 있는 민속행사가 열렸다.

정확한 명칭은 ‘장흥 고싸움 줄 당기기’. 1872년부터 시작된 고싸움 줄당기기가 이번에 문화재청이 주관한 ‘문형문화 유산 발굴 육성 공모사업’에 선정돼 재연행사를 한 것이다.

문화재청은 내년까지 국비와 지방비를 지원해 줄다리기를 체계적으로 육성하고, 사업이 끝나면 국가지정 무형문화재지정을 추진한다고 한다.

본란을 통해서도 몇 차례 소개했지만, 줄다리기 하면 ‘강진 줄다리기’가 역사가 가장 깊다. 장흥의 고싸움 줄다리기가 150년 전통이라면 강진은 400년에 가깝다.

강진 줄다리기의 뿌리는 전라병영성에 있다. 옛날 병영에서 줄다리기를 삭전(索戰)이라고 했다. 조선말 병영성 주변에서 큰 약재상을 했던 강재 박기현(1864~1913) 선생의 일기 ‘강재일사’에 삭전을 구경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강재선생이 줄다리기를 구경한 것은 1890년쯤 되지만 줄다리기가 시작된 것은 훨씬 오래전이다. 

정유재란 때 이야기다. 1598년 명나라의 장수 진린이 조선을 지원하기 위해 고금도로 파병돼 이순신의 조선수군과 합류한다. 이때 진린이 승리를 기원하기 위해 고금도에 관왕묘라는 관우를 모시는 사당을 지었다. 전쟁 후 1666년 진린을 함께 모셨는데 이때부터 병영에 있는 전라병마절도사가 매년 직접 찾아가 제사를 모셨다.
 
병마절도사가 고금도로 가기 위해서는 목리 앞에서 탐진강을 건너야 했다. 강진현감의 책임으로 각 어촌의 배를 공출해 배다리를 만들었다. 동편과 서편이 봄에 줄다리기를 해서 진 편이 배다리를 만드는 부역을 하는 전통이 만들어 졌다.

이 전통을 이은게 강진읍의 줄다리기와 목리의 줄다리기다. 강진읍 줄다리기는 정월 대보름에 읍내 지금의 중앙로에서 20여일 이상씩 진행됐다. 고의 직경이 2m가 넘고, 줄의 길이가 300m에 달했다. 강진의 큰 축제였다. 목리 줄다리기도 규모가 비슷했다. 30여년전까지 있었던 전통이다.

장흥은 이번에 ‘장흥 고싸움 줄다리기’를 발굴해 공모사업을 신청하기 위해 군과 문화단체, 각 사회단체가 연합이 되어서 아이디어와 지혜를 짜 냈다고 한다. 덕분에 국가 무형문화재를 하나 만들어 낼 수 있는 첫 단추를 끼웠다. 이런 건 배웠으면 좋겠다.   <주희춘>

저작권자 © 강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