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월간 청자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 전해

지난해 7월 14일부터 ‘강진청자 이야기’를 주제로 40화에 걸쳐서 해왔던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작년 강진일보 창간11주년 특집호부터 연재를 시작해 약 10개월동안 청자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독자들에게 들려주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랐던 대구면 당전마을의 어린시절 모습을 시작으로 어렸을 때 배우지 못한 아이들을 위해 야학회를 열었던 일 등 가벼운 소재를 시작으로 우연한 기회에 나의 집 마당에서 발견된 청자기와편을 계기로 청자 발굴작업이 시작됐던 일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청자 이야기가 진행됐다.

특히 청자재현사업이 시작되는 과정 이야기는 나에게 있어서 인생을 바꿔놓은 이야기였다. 1975년 당시 이용기 군수가 부임했고 김창식이라는 사람과 나의 집을 찾아온 일이 있었다. 이때 이 군수는 나와 청자 발굴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청자재현사업 의지를 내보였다.

이 군수는 나에게 제작해볼 것을 권유했고 자신있다고 답변을 하면서 청자재현사업이 시작됐다. 준비과정에서 갑자기 이 군수가 발령을 받아 떠나 걱정을 했지만 새롭게 부임해온 정채균 군수가 청자재현사업 예산을 세워주어 오늘날 청자사업의 기틀이 됐다.

청자를 처음 가마에서 꺼냈던 1978년 성공적으로 첫 작품이 나온 이후에도 성공이라고 할만한 청자를 만들어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특히 가마의 온도를 1천500도까지 올리고 그 온도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일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온도를 쉽게 올리기 위해 기름을 사용했는데 기름에서 나온 유황가스로 인해 청자 빛깔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다는 사실을 알아내기도 했다. 이를 통해 어떤 일이든지 정성과 시간을 들여야하고 지름길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했다.

이후 화목가마에서 보다 온도유지 관리가 편리한 가스가마를 일본에서 배워 도입한 일과 청자사업소 건립, 일본과 중국 등 방문기 등 다양한 이야기들을 독자들에게 들려주었다. 그동안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들 위주로 독자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고민도 많이 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LA 전시회장에서 ‘윤한봉’ 선생을 만난 일이었다.

1987~88년 무렵 전남도에서 기획해 미국에서 한국 문화를 알리기 위한 전시회가 열렸다. 이 전시회에 강진에서는 청자를 전시하기로 했는데 이때 나는 박물관에서 만들었던 20여점을 모아 가져갔다. 전시회가 열리는 LA에서 한 남성이 말을 걸었는데 바로 칠량출신으로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윤한봉이라는 사람이었다.

윤한봉은 먼 미국에서 고향 강진에서 청자를 재현하는데 성공했다는 뉴스를 전해듣고 자랑스러웠다고 이야기를 전해주며 전시회 소식에 시간을 내서 찾아오게 됐다고 전했다. 이날 나는 함께 사진을 촬영했고 이후 조심스럽게 칠량 동백리 가족들에게 사진을 전해주기도 했다.

이 일은 고향사람을 먼 타향에서 만났다는 반가움과 함께 청자가 많은 사람들에게 자부심을 전해주었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꼈던 일이었다. 청자재현사업이 진행되기 이전 나는 가마터 지킴이 역할도 했는데 이때 청자도요지 훼손 사건들이 많아 마음이 아픈적이 많았다. 

이런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용기, 정채균, 김영록 군수 등 당시 군수들이 청자에 관심을 갖고 지원해주었고 77년당시 김성진 문화공보부 장관과 고건 전남도지사 등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었다. 앞으로도 강진 청자의 명성이 계속이이지길 바라면서 10개월간의 연재를 마무리 한다.<끝>     <정리=오기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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