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후 미군이 강진에 처음 들어 온 것은 1945년 10월 9일이다. 인천에 하지중장을 사령관으로 한 상륙부대가 9월 8일 상륙한 한달 후의 일이다. 미군정의 시작이었다. 미 6사단 59중대와 강진을 담당한 45중대가 차례로 들어왔다.

미군들은 지금의 강진읍 동성리 새마을금고옆 건물에 본부를 차렸다. 군 행정과 치안업무 일체를 감독 했지만 군청이나 경찰서 건물을 접수하지는 않았다.

대신 야간통행 금지시간을 정해 공표하고 주민들이 오후 7시가 되면 돌아다니지 못하게 했다.이를 어긴 사람들은 3일간의 구류에 처하기도 했다. 치안권을 철저히 행사한 것이다.

코 큰 서양사람들이 강진에 집단으로 들어온 것은 1663년 네덜란드 하멜일행이 전라병영성에 유배를 온 후 처음 있는 사건이었다.

미군들이 본부로 사용했던 새마을금고옆 건물은 당시에는 2층짜리 일본식 건물이었다. 미군들은 자신들이 주둔해 있던 건물 뒤편에다 쓰레기를 모아놓곤 했다. 그곳이 아이들의 집중적인 구경거리였다.

미군들의 쓰레기중에서 가장 인기종목은 도루코 면도날이였다고 한다. 미군들은 한 두번 면도날을 쓰고 버렸다. 연필깎는 칼이 부족했던 시절 도루코면도날은 연필을 깎는데 최고의 인기 학용품이였다.

미군들은 지역민들과 화합을 위해 상당히 노력한 모습을 보였다. 종종 건물내에서 영화를 상영하고, 건물 주변에서 기웃거리는 사람들을 불러 잡지나 책을 보여주기도 했다. 미군이 공식적으로 강진을 떠난 것은 1948년 8월 15일이다.

그해 5월 10일 남한만의 총선거가 실시되었고, 제헌국회가 소집되었다. 제헌국회에서 제정된 헌법에 따라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미군정이 종식되었다.

그렇게 강진을 떠났던 미군이 60년대 초반에도 강진에 주둔했다는 증언이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강진읍 송현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61년 경에 미군 1개 소대 정도가 지금의 송현저수지 인근 도로변에서 2년 정도 주둔했다.

성전으로 넘어가는 솔치 부근이다. 정향심(88) 할머니는 미군들을 구경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김백진 이장도 미군들이 버린 깡통을 가지고 놀았다. 미군들은 4개의 텐트에서 생활했다.

주민들과 교류도 했다. 미군이 강진의 다른 지역에도 주둔했는지 아직 알 수 없다. 주민들의 기억속에 미군이 있다는게 흥미롭다.   <주희춘>

저작권자 © 강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