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가마에서 가스가마로 50년간 변화해온 강진청자

1960년대 나의 집에서 출토된 청기와 파편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발굴조사가 시작됐다. 

발굴조사가 시작되면서 강진에서는 청자를 재현하려는 움직임이 생겼고 1977년 청자재현사업추진위회가 만들어졌고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사라졌던 고려청자는 강진에서 다시 만들어지게 됐다.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50년이상의 세월이 흐르면서 청자를 만드는 방법과 작품들에게 많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 변화는 현재도 계속 진행중이다.

재현사업 초기에는 가마가 없었기에 경기도 도자기 제작 업체들의 가마를 보고 가마를 만들었다. 이때 예산이 많지 않았던 시절이었기에 나와 사람들이 직접 재료를 구해서 가마를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가마에서 장작을 이용해 불을 때고 도자기를 만들어 구워냈다. 화목가마를 사용햇던 것이다.

화목가마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기름을 이용해 온도를 올리다보니 비취빛이 나타나지 않아 고생을 했으나 원인을 찾아 개선하기도 했다. 이렇게 화목가마는 온도를 유약이 녹는 시점인 1천500도까지 올리는 것이 어려웠다. 불관리를 위해서 가마를 때는 동안 불을 지켜보면서 관리도 해야했다. 그러다보니 완성품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이후부터는 일본의 도자기를 만드는 마을을 둘러본 후 그곳에서 목격한 가스가마를 도입했다. 80년대무렵이었는데 일본에서는 당시 이미 가스가마를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나는 일본에서 둘러본후 가스가마 도입을 건의해 가스가마 설치가 이뤄졌다. 가스가마 활용법을 익힌후부터는 화목가마에 비해 온도조절이 용이했기 때문에 보다 좋은 청자를 만드는데 도움이 많이 됐다.

이때 처음 도입됐던 가스가마는 요즘은 개인요업체들 대부분 보유하고 있는 필수 시설이 됐다. 가스가마에 청자를 넣고 일정 온도를 설정하면 온도가 유지되기 때문에 화목가마에 비해 성공적인 작품이 만들어질 확률이 높아졌다. 이로인해 강진의 청자산업이 활성화되는 계기가 됐다.

초창기때에는 대부분의 청자가 예전 고려시대 만들어졌던 작품들을 모방한 재현품들 위주로 생산이 이뤄졌다. 사업소에서 박물관으로 바뀐이후에도 재현품이 주를 이루기도 했다.

하지만 개인요 업체들이 늘어나고 청자가 산업화되면서 재현품위주에서 점차 생활에서 사용가능한 제품들로 바뀌게 됐다. 밥그릇과 국그릇에서부터 최근에는 차를 마시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다기세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활용품들이 청자로 만들어지고 있다.

그에 따라 청자를 생산하는 개인요에서도 각자 작가들의 개성에 맞는 작품들이 탄생하면서 고객들로부터 선택을 받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이는 청자축제가 매년 개최되면서 전국에 강진 청자에 대한 홍보가 이뤄졌기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모습도 최근에는 또 한번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강진에서 청자를 만드는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생활용 그릇에서 한단계 더 나아가 조명이나 가구, 건축자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용도로 점차 확대되고 있다. 특히 조명이나 가구는 금속이나 목공예를 청자와 접목시켜 보다 다양한 분위기의 작품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강진군은 청자로 전국에 알려진 고장이다. 앞으로 청자를 만드는 작가들과 행정기관이 함께 힘을 모아 강진청자 산업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하고 군민들도 청자에 관심을 갖고 구입해주면 좋을 것이다.       <정리=오기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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