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광/ 강진군 세무회계과

김영랑 시인은 모란이 피기까지, 찬란한 슬픔의 봄을 기다렸다. 모란이 피는 기쁨과 함께 져버리는 슬픔을 노래하며, 늘 다시 오는 봄을 기다렸던 김영랑 시인처럼 우리는 늘 봄과 함께 찾아오는 향기로운 꽃들을 기다린다. 

완연한 봄기운이 만연하고, 코로나 거리두기가 완화되자 사람들은 기다렸단 듯 밖으로 나서고 있다. 그런 마음을 한 발 앞서 눈치 챈 강진은 51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강진청자축제 개최 시기를 여름에서 반 년이나 앞당겨 2월 말에 개최했다. 

2월, 아직은 쌀쌀한 날씨였지만 밤이면 축제장에는 빛의 꽃이 피어났다. 나무 위에 피어난 LED 꽃과 물결치는 초록빛 풀밭. 계묘년을 맞아 강진을 찾은 커다란 토끼와 함께 축제장을 살피러 내려온 밝은 보름달까지. 

LED 꽃만 핀 것이 아니다. 청자축제에는 유달리 가족 단위 체험 콘텐츠가 많이 준비되었다. 최근 들어 쉬이 날릴 수 없는 연을 마음껏 하늘 위로 날려 보낼 수 있었던 연날리기부터, 복잡한 준비 없이 캠핑을 체험할 수 있었던 불멍캠프, 쌀쌀한 날씨에 뜨끈하게 발을 담가 온 몸을 녹였던 족욕까지. 축제장에는 행복한 아이들과 흐뭇한 부모들의 웃음꽃이 만발했다. 

직장인의 삶에서 퇴근 시간이 즐거운 만큼 출근 시간은 괴롭기 마련이다. 하지만 내게는 출근 시간마저 즐거운 시기가 있었다. 바로 벚꽃이 만개하는 3월 말. 지금은 분가를 한 연유로 그 기쁨을 누리지 못하지만, 본가인 작천에서 군청으로 출퇴근하던 시절에는 만개한 벚꽃이 출근길의 기쁨이자 환희였다. 

작천면에서 군동면까지 이어지는 벚꽃 삼십리 길. 나이를 먹고, 고향에 대한 내 그리움이 커지는 만큼 벚꽃은 더욱 우거져, 차갑던 겨울의 기운을 사르라니 녹여버렸다. 먼 친척보다는 가까운 이웃이 낫다고 했던가.

머나먼 진주 군항제나 여의도 벚꽃축제보다 강진의 벚꽃이 더욱 따사롭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 하다. 하지만 강진을 찾은 관광객의 감탄사를 들어보면 단순히 주관적인 아름다움만은 아닌 것이 확실하다. 

남미륵사의 철쭉은 또 어떤가. 매년 4월이면 전국의 불자(佛子)들이 남미륵사를 찾는다. 물론 동양 최대 규모의 황동 아미타불 불상의 자비로 온 누리에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는 법심도 이유겠지만 남미륵사를 타는 듯 물들이며 만개한 철쭉과 서부해당화를 보려는 열망 역시 한몫했을 것이다. 

백련사에 다소곳이 피어 소복히 지는 동백꽃. 보은산 오르막에 수줍게 피어나는 수국. 올 가을 생태공원에 흐드러질 코스모스와 가을 바람에 처연히 흩날릴 갈대까지. 

이런 꽃들을 위해서는 물론 날씨도 따라줘야겠지만, 강진군 공무원들의 보이지 않는 땀과 노력도 필요하다. 밤낮 가림없이 찌는 하우스 안에서, 때로는 뙤약볕 아래서 모종을 관리하는 농업기술센터 직원들. 그 꽃들을 실어 나르고, 각 읍·면 경관을 위해 심고는. 행여나 마를 새라 쉬지 않고 물을 주는 면사무소 직원들. 그리고 그런 아름다운 강진의 꽃들을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을지 고민하는 축제 관련 직원들과 모든 군 산하 직원들의 고민과 열정.

일각에서는 잦은 축제들로 피로감과 함께 지역 경제 활성화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올리브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과 프랑스하면 와인이 떠오르는 것이 어떤 이유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강진은 고려청자, 쌀귀리, 파프리카, 딸기, 묵은지와 한우까지 널리 알리지 못해 안달나는 것들이 많다. 하지만 강진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면, 아무리 좋은 농식품이 많다고 해도 누가 사 먹을 수 있겠는가. 

당장 왜 관광객의 웃음꽃만 신경을 쓰나 서운할 수 있다. 하지만 결국 강진을 찾은 관광객의 웃음꽃이 결국에는 군민의 웃음꽃이 되는 것이다. 관광객의 발길이 수십, 수백번에 걸친 농수특산물 구매의 손길이 되는 것이다. 이런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오늘도 우리 군 산하 전 직원은 또 어떤 관광의 꽃을 피울지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다.

저작권자 © 강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