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산에는 깊은 골짜기가 없을 것 같지만 있다. 보은산 정상에서 서남쪽으로 패어 내려간 지점에 깊은 골짜기가 있다. 고성사 뒤쪽이다.

행정구역으로는 강진읍 송덕리 산이고, 송덕리 송현마을 주민들의 터전이다. 송현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범골, 범골창이라고 한다. 호랑이 사는 골짜기란 뜻이다.  

범골에서 남쪽 등성이를 타고 조금 올라가면 평평한 곳에 채석장이 있다. 이곳이 바로 강진에서 가장 유명한 구들장이 나온 곳이다. 일명 ‘범골방독’이다. 예전에는 모든 집이 온돌이었기 때문에 구들장이 필수 건축자재였다.

송현마을 사람들이 이곳에서 구들장을 채취해 구르마에 실어 내다 팔았다. 구들장으로 먹고 산 사람이 10여명에 달했다. 말뚝을 박아 망치를 두드리면 두부가 잘리듯 돌이 떨어져 나왔다.

돌이 얇고, 매끄럽고, 단단했다. 해남, 완도까지 소문이 나 장사꾼들이 많이 찾아 왔다. 70년대 초까지 있었던 일이다.

강진의 구들장이 유명했으니 유명한 구들 기술자가 없었을리 없다. 구들 계통에 유명한 사람이 옴천 동막마을 안달근(2008년 작고)선생이다. 예전에 가장 큰 방은 절간에 있었다. 99칸 양반집도 방 하나하나는 작았다.

큰 사찰은 스님들이 집단으로 생활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방하나가 30평이 넘는 것이 많았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절간 방의 구들을 잘 놓은 사람을 그 계통에서 최고로 쳤다. 우리의 안달근 선생이 그런 사람이었다.

일찍이 안달근 선생은 해남 대흥사 아래 유선여관의 전담 구들 기술자로 활약했다. 유선여관 방이 30개가 넘을 때다. 어느 때 대흥사의 큰 고민을 풀어줬다. 대웅보전 좌측 건물 방 두 개가 불이 들이지 않아 수년 동안 방치된 것을 거뜬히 해결했다. 기술의 승리였다.

절간 일은 스님들의 입을 통해 퍼진다. 전국 사찰에서 안달근 선생을 부르는 목소리가 커졌다. 먼저 경북 달성군으로 초빙돼 유가면 비운사에서 5년을 거처하며 50명이 거처하는 방 전체를 재시공했다.

여세를 몰아 지리산 화엄사와 말사인 비야범사에서 3년간 기거하며 큰 방을 놓았고, 합천 해인사와 인천 용화사, 경남 쌍계사, 광주 증심사등의 방을 새로 놓거나 수리했다. 

안달근 선생은 90년대 초까지 구들장을 만졌다. 요즘 다시 구들을 놓는 집들이 는다고 한다. 범골 구들장은 채취하지 못하지만 안달근 선생의 후예는 많이 나왔으면 한다.   <주희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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